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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달의 연인' 고대 주얼리 이야기 - 女주인공들의 귀걸이 디자인 ⑦

2016-12-18 21:58:52

[빅데이터뉴스 정백희 기자] [글로벌경제]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는 뜨거운 인기와 더불어 드라마 속 소품들에 대한 국내외 팬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본 글은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속 고대 유물 주얼리 이야기 - 고전 문양과 정통 왕실 세공법을 활용한 장신구 디자인' 시리즈 일곱번째로, 드라마에 나타난 주요 전통 소품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마 '달의 연인' 고대 주얼리 이야기 - 女주인공들의 귀걸이 디자인 ⑦
<달의 연인>에 등장한 모든 장신구는 민휘아트주얼리에서 디자인 및 제작을 총괄했는데, 김민휘 정재인 작가가 디자인을, 이용우 최혜지 장인이 제작을 맡았다. 민휘아트주얼리의 디자이너와 장인으로부터, <달의 연인> 장신구 중 여자주인공이 착용했던 '귀걸이'에 얽힌 고대 유물이야기와 디자인에 숨은 뒷이야기들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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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달의 연인' 고대 주얼리 이야기 - 女주인공들의 귀걸이 디자인 ⑦

● 고려시대 귀걸이

귀걸이는 귀에 거는 장신구를 통칭하는 용어로 귀를 뚫어 꿰게 되어 있는 것과 귓바퀴에 걸게 되어 있는 것이 있다. 귀걸이는 짐승의 뿔이나 이빨 등으로 만든 것이 사용되었던 선사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사람의 몸을 치레하기 위한 장신구 중에서 가장 일찍부터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남녀 구별 없이 애용되어 왔는데 나이가 어릴 때부터 귀를 뚫어 귀걸이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풍속은 오랑캐의 풍속이라며 배격받기도 했지만 고려를 거쳐 조선조에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금·은·금동제의 귀고리는 거의 3백 쌍으로 추산될 정도로 많지만 어느 하나같은 것이 없을 정도로 디자인이 다양하다. 지배층의 고분에는 피장자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귀걸이가 부장되어 있어 당시 남녀 모두 귀걸이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과 타인을 시각적으로 구별짓고, 자신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표출하기 위해 귀걸이 등의 장신구를 착용하였다. 고려 시대에서도 귀걸이가 애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많은 유물이 남아 있지 않아 어떤 형태의 귀걸이가 주로 착용되었는지 가늠해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 해수 귀걸이 (1)

▲(좌)해수귀걸이(우)유물:연화문수막새
▲(좌)해수귀걸이(우)유물:연화문수막새
연화문은 보통의 꽃은 꽃이 핀 뒤에 열매를 맺는 반면,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생기는 점에서 길상무늬로 여겨졌다. 고려시대에도 장신구의 장식을 비롯하여 기와 등에 많이 쓰이던 문양이다. 8개의 꽃잎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연화문 수막새에서 해수(이지은, 아이유 분) 귀걸이의 모티브를 얻었다.

지붕의 처마 끝 쪽을 가리면서 아름답게 드리우는 부분이 막새기와인데 수키와의 드림새를 수막새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와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를 비롯하여 고려시대에도 많이 사용됐다. 원형인 수막새기와의 무늬는 대체로 활짝 핀 연꽃을 위에서 본 형태를 이루고 있다.

디테일이 많이 들어간 연화문은 자칫하면 노숙해보일 수 있기에 최대한 심플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느낌이 담긴 연화문 수막새를 장신구 디자인의 모티브로 삼았다. 꽃잎을 입체감 있게 구현하였는데 의상 색감에 맞게 밝은 톤의 스톤을 배치하여 생동감을 주었다.

● 해수 귀걸이 (2)

▲(좌)해수귀걸이(우)유물:청동거울
▲(좌)해수귀걸이(우)유물:청동거울
해수의 귀걸이는 고려를 대표하는 유물 중에 하나인 청동거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화장 문화의 발달과 함께 청동 거울도 크게 발전한 고려시대에서는 다양한 형태와 장식들의 거울이 제작됐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거울은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수입되었고 비록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대부분 중국 거울을 그대로 모방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고려에서는 고려 고유의 거울 양식으로 발전시킨 형태가 많이 제작됐다.

과거 거울은 천상과 지상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여겨졌다. 고대인들은 온 대지를 밝게 비추는 태양을 숭배했는데 거울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빛을 신비롭게 여겼고, 그 빛에는 하늘의 메시지가 담겨 있으며, 지상에 사는 이들의 소망도 실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해수는 타임슬립한 인물로 나오고 태조는 해수가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임을 감지한다. 이런 해수에게 청동거울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장신구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 우희 귀걸이

▲(좌)우희귀걸이(우)유물:무령왕비금제관식
▲(좌)우희귀걸이(우)유물:무령왕비금제관식
우희(서현 분)는 후백제의 마지막 공주로 백제 유물 무령왕과 왕비의 금제 관식의 화염문에서 차용한 모티브를 활용한 장신구를 착용했다.

금제 귀걸이는 백제 왕비의 관식인 무령왕비의 금제관식에서 디자인의 영감을 받았다. 특히, 무령왕비의 금제관식은 백제 왕비의 관식으로는 유일하게 발견된 것으로 후백제의 마지막 공주라는 설정의 우희에게 잘 어우러질 것 같았다.

무령왕비의 금제장식은 얇은 금판에 인동당초문과 화염문 장식을 투조한 것이다. 중앙에는 7개의 연꽂잎이 바닥으로 늘어진 모습을, 그 위에는 막 피어오르는 꽃을 꽂은 꽃병을 투조하고 있어 불교적인 요소가 관식의 제작에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왕비의 관식은 연화 한송이가 피어나는 팔메트를 장식한 병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의 팔메트가 완전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령왕릉에서 같이 발견된 왕의 관장식에 비해 크기가 좀 작고 정연한 느낌을 주는데, 서현 씨의 작고 고운 얼굴선과 정연한 느낌의 관식의 느낌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 우희 귀걸이

▲(좌)백제금제관장식(우)유물:백제나주정촌고분금동신발
▲(좌)백제금제관장식(우)유물:백제나주정촌고분금동신발
후백제의 마지막 공주 우희의 귀걸이는 백제 금제 관장식과 백제 나주 정촌 고분 금동 신발 바닥 중앙에 장식된 연꽃 문양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하였다.

백제권 유적에서 많이 출토되는 금동 신발은 대개 중앙의 임금과 조정이 지방의 유력세력을 다독이며 지배하기 위해 내렸던 사여품으로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디자인에 참고한 나주 정촌 고분 금동신발은 연꽃과 도깨비 모양이 신발 바닥에 투조와 선각 기법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역대 금동 신발 출토품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태가 보존된 채 출토된 유물이다.

디자인의 영감이 된 연꽃 문양은 8개의 꽃잎을 삼중으로 배치하고, 중앙에 꽃술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디테일한 연꽃 금속판에 우희의 상징석인 붉은 산호 구슬을 장식해 화려함을 더했다.

● 연화 귀걸이

▲(좌)연화귀걸이(우)유물:고려꾸미개
▲(좌)연화귀걸이(우)유물:고려꾸미개
연화(강한나 분)의 귀걸이는 고려 꾸미개에서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하였는데, 화려함을 더 하기 위해 선홍빛의 산호 원석을 꾸미개 모양으로 깎아서 만들었다.

고려의 장신구 유물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물고기, 연꽃, 나비 등 자연을 소재로 뚫음무늬로 디자인한 은제 꾸미개가 많이 발견된다. 주로 길상을 의미하는 장식이 많은데 연꽃, 연밥, 연잎, 물고기 비늘의 묘사도 아주 정교하고, 출토 유물의 수량도 매우 많다. 아직 이 장신구의 용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복식에 사용된 장식일 것으로 추정되고, 출토 수량이 많은 것으로 보아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계속)

정백희 기자 new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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