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전년 대비 가장 빠른 사장단 인사 단행 조선 밀집력 높이면서 외연 확대 추진위함이라지만 2027년 조선 경기 호황 끝날 가능성에 대비하고자 계열사, 임직원 간 ‘사일로 효과’ 깨는 데 초점 맞춰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2026년 1월5일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서 열린 ‘오프닝 2026(Opening 2026)’에서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HD현대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정기선 회장의 HD현대가 지난 7일 단행한 사장단 인사는 2027년 이후의 조선·해운 경기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비하는 한편, 조직 내 ‘소통 단절’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3년 치 이상의 물량을 수주해 인력과 설비를 풀가동하고 있으며, 이에 부속된 엔진 등 기자재 사업도 호황기를 구가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버금가는 부흥기를 겪고 있는 2026년 현 상황에서 조선업계 세계 1위 HD현대가, 주력인 조선 부문에 집중된 사장단 인사를 낸 배경에는 경영진들이 심각하게 여기는 위기 요소가 반영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HD현대의 사장단 인사는 시기적으로 예상보다 빠른 것이었다. ‘오너’ 정기선 회장이 총수에 오르는 내용을 포함한 사장단 인사를 낸 것이 2025년 10월 17일로, 통상 11월에 이뤄졌던 인사 시기를 한 달여 가까이 앞당긴 것이었는데, 올해는 이보다 열흘여 빠른 7일에 발표했다.
대기업들은 사업 전략을 추진하다가 병목현상이 발생했다는 진단이 나오면 가장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처방으로 인사를 낸다. 그렇다면 HD현대는 전 사업부문에서 일감을 쓸어 담고 매출과 이익을 내고 있어서 이른 사장단 인사를 내야 할 이유가 없는데, 예상을 깨고 서둘러 단행했다. 굳이 옥에 티로 지적하자면 방위 사업인데, 이 부문에선 아무런 변동이 없었다.
정기선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앞세워 진행한 첫인사의 방점은 ‘조선’에 꽂혔다. 설립 이래 최초로 그룹 내 조선 계열사 전체를 아우르고 지휘하는 ‘조선사업 총괄 부회장직’을 신설하고 이상균 HD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에게 자리를 맡겼다. 조민수 HD현대중공업 조선사업 대표이사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해 안전총괄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이를 통해 HD현대중공업은 이상균‧조민수 각자 대표이사 체제가 되었다. 한주석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 부사장과 박찬혁 HD현대사이트솔루션 부사장도 각각 사장으로 승진했다. 나머지 모든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는 모두 유임되었다.
HD현대는 올해 사장단 인사의 핵심이 그룹의 주력인 조선사업을 안정적으로 키우면서 차세대 먹거리 투자를 확대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계열사 단위로 추진해 온 사업을 그룹 차원에서 조율해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고,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고 있는 소형모듈원전(SMR),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엔진발전 등 차세대 사업의 확대를 도모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즉, 미래를 지향하는 인사였다는 것이다.
형식상으로는 소폭 승진이고, 실적이 고공 행진을 하고 있는 현 경영체제를 보완 강화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장단 인사는 문제가 있을 때 단행한다. 그렇다면, HD현대는 잔치라고 보긴 어렵다.
외부 요인을 먼저 살펴보면, 비이상적으로 상승세를 이어오던 조선 경기가 꺾이는 시기가 다가왔다. 통상 경기는 등락을 반복하는 데 조선 경기는 2020년대 들어 7년째 우상향 기울기를 지속했다. 2000년 초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전까지 치솟았던 때와 유사한 패턴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표면적으로는 2027년부터 조정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있다며 침체 전환 전망엔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현재도 신조 발주는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2027년부터 전 세계 조선사가 건조한 선박의 인도량이 급증한다는 점을 부각하지 않은 반쪽짜리 분석이다. 영국 해운시황 전문 기관 Maritime Strategies International(MSI)에 따르면 세계 조선산업은 향후 수년간 연간 선박 인도량이 8000만GT(총톤수) 이상으로 이어지며, 2027년에는 약 1억 GT 수준까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미국·이란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2026년 선박 수요가 올라 중고 선박 용선 가격이 건조 가격보다 오르는 등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엄청난 물량의 선박이 쏟아져 나온다면 시장은 공급 과잉으로 전환되어 조선·해운 시황 모두 안정화를 넘어 하락세로 돌아선다. 이러면 선주의 발주량이 줄어들고 조선사는 그만큼 일감을 얻기 어려워진다.
부족한 일감을 가져오려는 조선소들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신조선가 하락 압박도 커지면서 중국 조선사와의 경쟁은 심화할 전망이다. 2026년 들어 중국은 전 세계 발주 선박의 70~80%를 싹쓸이하며 사실상 마지막 남은 한국을 에워싸고 있다. 지금 3년 치 일감을 쌓아뒀더라도 2027년부터 적정 수준의 일감을 확보하지 못한 조선사는 4~6년 후 수주 절벽 사태에 직면해 2010년대 조선업 전체 대규모 부실 사태를 다시 맞이할 수 있다.
다만, MSI 등 주요 기관들은 향후 조선산업 경기는 선종별·기술별로 극심한 양극화가 나타나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암모니아·메탄올 등 친환경 선박, 군함·특수선, 미국의 조선산업 재건 같은 새로운 수요가 충격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HD현대는 자력으로 고부가가치 선박과 중형 선박, 군함과 특수선 등 모든 선종 건조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조선업 수직계열화를 이뤄낸 그룹으로 업황 변동 속에서도 현재의 위상이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기선 회장이 불안감을 느꼈다면, 문제를 내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래전부터 제조 부문에서는 모든 분야를 커버할 수 있는 종합 중공업 기업을 표방했던 HD현대가 지금처럼 각 부문이 유의미한 규모의 사업을 전개하며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처음이다. 따라서 정기선 회장은 지금까지 수면 아래에 있던 고민 요소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는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신경영’을 주창했을 때, 이재용 회장이 뉴 삼성을 추진하면서 떠올린 고민과 일맥상통했으니, 바로 ‘소통과 조화’다.
사업 규모가 커지고, 이질적인 문화를 갖춘 기업, 임직원들을 한 식구로 받아들이면서 HD현대도 과거 정주영 창업 회장이 뿌린 현대 정신이라는 통일된 가치관이 희석된 게 사실이다. 특히, 각 사업부문, 각 계열사끼리도 화합과 협업을 하기 힘든 ‘사일로 효과’가 탄탄해지고 있다. 중간 지주사 지주회사인 HD현대와 사업부문 중간 지주회사인 HD한국조선해양과 HD현대사이트솔루션, 그리고 각 계열사로 이어지는 복잡한 지배구조 관계도 그렇다. 조직도가 복잡해지는 만큼 이에 속한 조직은 빠르게 관료화해 비효율을 촉진한다는 사례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닐 정도다.
“계열사 단위로 추진해 온 사업을 그룹 차원에서 조율해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고, 차세대 사업의 확대를 도모하기 위함”이라는 HD현대의 설명은 이러한 예측을 확신케 하는 자백이나 마찬가지다. 즉, 현재 HD현대는 모든 계열사가 옆을 볼 수 없는 눈가리개를 씌운 경주마들이 경마장 내 각자 트랙에서 자기 페이스대로 달리는 데만 열중하고 있는 각자도생식 문화가 심화했음을 보여준다.
재계 관계자는 “정기선 회장이 여러 신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며 실질적인 경영을 본격 실행하는 2027년 이후는 하필 조선 경기가 호황이 끝날 것으로 보여 재무 이슈가 부각될 것으로 보이는데, 소통과 협업이 쉽지 않은 그룹 내 조직 체계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내부 문제로 기회를 그르칠 위험이 더 크다”라면서 “‘지속 가능한 정기선의 HD’가 되기 위한 첫 고비로,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