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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50년 돌아보기-28]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작

2026-05-01 08:59:37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전 세계 사태로 확산
美 900만 명 실업자 발생, 20조 달러 가계 자산 증발
‘저성장 국제 무역의 고착화’ 성장 전환 쉽지 않아

현대상선(현 HMM)의 4700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급 컨테이너 ㅇ누반섬 현대그레이스호(Hyundai Grace)가 컨테이너 화물을 싣기 위해 항구에 정박해 있다. 2007년경 미주 동안 노선 등에 투입된 현대그레이스호는 2014년 10월, 미국 시애틀 연안에서 조난당한 요트 탑승객 3명을 구조하여 화제가 된 바 있는 선박이다. 사진= HMM 50년사
현대상선(현 HMM)의 4700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급 컨테이너 ㅇ누반섬 현대그레이스호(Hyundai Grace)가 컨테이너 화물을 싣기 위해 항구에 정박해 있다. 2007년경 미주 동안 노선 등에 투입된 현대그레이스호는 2014년 10월, 미국 시애틀 연안에서 조난당한 요트 탑승객 3명을 구조하여 화제가 된 바 있는 선박이다. 사진= HMM 50년사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2008년 현대상선은 조심스럽게 새해를 시작했다. 해운업의 호황 기조가 수 년 째 계속되고 있어 하락 사이클이 예견되는 가운데, 2007년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2007년 하반기에 시작돼 2010년대 초반까지 수 년 간 이어진 일련의 금융 위기를 말한다. 미국에서 부동산 거품이 꺼진 후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촉발되었다.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2000년대 초반에 이미 그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IT버블 붕괴, 9·11 테러, 아프간·이라크 전쟁 등으로 미국 경기가 침체하자 미국 정부는 경기부양책으로 초저금리 정책을 펼쳤다. 덩달아 주택 융자 금리가 대폭 인하되고 부동산 가격은 빠르게 상승했다. 급기야 주택 가격이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대출금리보다 높은 상승률을 보이게 되자, 너나없이 대출로 주택을 사들이는 것이 붐을 이루었다.

심지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증권화되어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는 상품으로 통용되며 거래량이 폭증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2004년 미국이 저금리 정책을 종료하면서 부동산 버블이 꺼지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금리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저소득층 대출자들이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해 연체가 확산되었다. 증권화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구매한 금융기관들도 대출금 회수 불능 사태에 빠져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금융사가 부실화됐다.

결국 우려했던 대로 2008년 들어 세계 경제는 순식간에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사태 발생 초기에 미국 정부가 적극 대응하지 않고 공식적인 개입을 부정하는 바람에 시장의 불안감이 커져 대형 금융사, 증권사의 파산을 가속화하는 결과가 되었다. 이는 결국 세계적인 신용경색으로 이어지며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주었고, 마침내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했다.

2008년 9월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의 파산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치닫는 기폭제가 되었다. 당시 리먼브라더스의 부채 규모는 무려 6130억 달러로, 대부분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과 파생상품 손실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으로 기록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인해 다우 존스 산업평균지수는 하루 동안 4.5% 급락했다. 이는 2001년의 9·11 테러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었다. 이때부터 미국은 심각한 수준의 경제 공황을 겪어야 했다. 2008~2009년 사이에 전체 노동인구의 6%에 해당하는 900만 명의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었고, 부동산 거품 붕괴와 투자 손실로 무려 20조 달러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금액의 가계 자산이 증발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는 미국 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에도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MBS(주택저당증권)·CDO(부채담보부증권) 등의 파생금융상품을 사들인 세계 각국의 금융회사들을 순식간에 파산 위기로 내몰았다. 특히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국가부채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세계 경제는 장기간의 금융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증폭된 금융시장의 불안정은 곧바로 실물경제로 전이되었다. 신용경색이 금융기관과 기업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면서 투자와 소비는 급감했고 세계 교역은 급속히 위축되었다. 그리고 많은 국가들이 심각한 경기 후퇴에 직면했다.

경제 공황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불안정성이 높아지자 상품 무역량은 사상 유례없는 폭락세를 보였다. 주요 산업의 수요가 급격하게 꺾였고 무역 금융이 경색되면서 수출·수입 모두 급감했다. 해운시장에서는 많은 선박이 항만에 정박하거나 운항을 중단해야 했고 운임지수도 바닥을 치는 수준까지 하락했다. 그야말로 2009년은 국제 무역의 암흑기와도 같았다.

2009년의 골 깊은 침체를 겪은 후 2010년 세계 경제는 강한 반등세를 보였다. 세계 무역은 약 14% 수준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고 투자·소비도 일부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회복세는 기술적 반등에 의한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것이어서 세계 경제의 완연한 회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반짝 회복세를 보인 이후 유럽의 재정위기는 더욱 악화되었다. 여기에 일본의 대지진과 태국의 홍수 등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기까지 했다. 해운시장에서는 선박 발주량이 유지되면서 선박 공급 과잉 부담이 누적됐다.

이 시기에 나타난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저성장 국제 무역의 고착화’ 현상이었다. 2010년의 기술적 반등 이후 국제 무역은 저성장 추이가 확연해졌다. 문제는 이러한 저성장이 단순한 경기둔화 때문만은 아니라는 데 있었다. 여러 가지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어서, 단기간에 성장 국면으로 전환되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의 설비투자 여력이 줄어들어 투자 부진이 심화되었고, 이는 자본재 무역의 수요 감소로 이어졌다. 또 1990~2000년대에 무역 확대를 이끌었던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의 한계가 점차 드러나면서 무역 증가 여력이 둔화됐다.

중국의 리밸런싱(Rebalancing)도 무역 위축을 부르는 요인이었다. 중국이 수출·투자 중심에서 소비·내수 중심의 성장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면서 자원 및 중간재 수입 증가세가 꺾인 것이다. 게다가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무역 금액 기준으로는 상당한 감축 효과가 발생했다. 신흥국에서 나타난 금융시장의 불안, 환율의 변동, 그리고 자본 유출의 위험 등도 무역 및 투자를 제약했다.

결국 2008년의 리먼브라더스 사태는 금융 붕괴에서 시작해 실물경제와 국제무역에 직격탄을 가한 셈이 되었다. 특히 2012년 이후 세계 무역은 구조적인 약화 국면이 펼쳐졌다. 이로 인해 세계 경제는 저성장·저무역의 구조적 둔화가 고착화하며 장기간의 침체에 빠져들었다.

<자료: HMM 50년사>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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