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전쟁 틈타 유가 담합"vs 업계 "정상적 가격 결정" 맞서 사전 가격 합의 입증이 관건 전망…치열한 법정 공방 예고돼 전량구매계약·조사방해 혐의도 쟁점…불공정 거래 여부 주목 최고가격제 손실보전 논의에도 변수...업계 요구사항 '빨간불'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빅데이터뉴스 김유승 기자]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에 따른 고유가 국면을 틈타 대규모 가격 담합을 벌인 혐의로 국내 4대 정유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국제 유가 하락기에도 국내 공급가를 고수하며 폭리를 취했다는 입장인 반면, 정유업계는 시장 요소를 반영한 정상적 경영 활동이라며 맞서고 있어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다만 이번 기소로 인해 최고가격제 손실에 대한 추가 보전 논의는 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8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6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HD현대오일뱅크,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정유 4개 법인과 일부 임직원을 기소했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미국·이란 전쟁 발발 직후 리터당 30~40원씩 입금가를 일제히 인상하기로 사전 합의해 약 14조2000억원 규모의 담합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가격 추종에 따른 여파까지 추산하면 전체 규모는 약 26조원에 달한다. 다만 검찰은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경우 가격을 뒤따라 인상한 '의식적 병행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 직접 가격 담합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현재 양측의 입장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검찰은 정유사들이 상당한 원유 재고를 비축하고 있어 단기적 원가 압박이 적었음에도 전쟁을 명분 삼아 이득을 취했다고 지적한다. 검찰은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MOPS)이 20원 이상 하락했을 때도 국내 공급가를 올리거나 동결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유업계는 가격 결정이 MOPS뿐만 아니라 환율, 정제 마진, 유류세 등을 종합한 결과라며 담합 혐의를 전면 부인한다. 경쟁사 가격 모니터링 역시 통상적인 경영 활동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주유소의 선택권을 묶어둔 전량구매계약의 위법성도 주요 쟁점이다. 검찰은 정유 4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영 주유소에 자사 제품만 구매하도록 강제하고, 이탈 시 매출액의 10~30%에 달하는 위약금을 물리는 방식으로 유통 구조를 왜곡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주유소가 정유사의 일방적인 통보 가격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됐다는 취지다.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는 이 과정에서 공정위 현장 조사 정보를 미리 파악해 자료를 삭제한 조사 방해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정유업계는 브랜드 계약 특성 상 품질 관리와 유통 질서 유지를 위한 통상적인 계약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상생 협약을 통해 타사 제품을 40% 이내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제한을 완화한 점 등을 들어 불공정 거래가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이번 법정 공방의 핵심은 정유사들 간에 실질적인 사전 합의가 존재했는지 여부다. 실제로 이날 공정거래위원회가 대상, 사조CPK, 삼양사, CJ제일제당 등 4개 업체에 총 7475억 7800만 원의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한 사례를 보면, 이들은 가격 인상·인하 폭과 시기 뿐만 아니라 거래처에 제시할 가격 변경 사유, 공문 발송 시기와 순서까지 맞춘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은 정유사 사건에서도 이와 유사한 수준의 가격 정보 교환과 인상 폭 조율 정황을 입증해야 한다.
이번 기소는 정부가 추진 중인 석유 최고가격제 손실 보전 논의와 맞물려 업계에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정유사들은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약 3개월간 최고가격제로 인해 내수 시장에서 3조~5조 원의 손실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정부가 편성한 4조 2000억원 규모의 예비비를 웃도는 액수다. 업계는 실제 시장 가격을 보상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는 반면, 정부는 원가를 기준으로 손실을 산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정유사들의 담합 의혹까지 전면에 불거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대규모 담합으로 인위적인 유가 상승을 유도해 이득을 취해온 정유사들에 국민 혈세로 손실을 보전해 주는 것이 타당하냐는 비판이 일기 때문이다. 검찰도 수사 과정에서 도출된 분석 결과를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유해 부당한 국고 손실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6일 SNS를 통해 "민생을 볼모로 폭리를 취하는 불법 담합 범죄는 엄단하겠다고 수차례 경고한 바 있다"며, "이번 기소 이후에도 국제 유가 조정 국면에 또 다른 담합은 없는지 면밀히 살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 장관은 "석유 최고가격제 실시에 따른 손실 보상 문제에서도 국민 혈세가 부당하게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산업부와 철저한 협력 체제를 유지하겠다"고함께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이 요구해 온 손실 보전 정산 작업에도 강력한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