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영화 ‘스페이스 잼’은 ‘벅스 버니’가 농구로 지구를 구한다는 내용으로, 주연인 마이클 조던을 비롯해 많은 농구 선수들이 출연했다. 카메오로 출연한 농구 선수 중 유독 작은 키를 가진 선수 한 명을 볼 수 있다.
이 선수가 바로 ‘먹시 보그스(Muggsy Bogues)’. NBA 역사상 최단신으로 농구 코트를 누빈 ‘호네츠의 돌격대장’이다.
미국 프로농구(이하 NBA)는 무서운 재능들이 펼치는 경연의 장이다. 세계 최고의 재능을 가진 소수가 경쟁하는 곳인 만큼, NBA는 모든 면에서 높은 진입 장벽을 가진다.
따라서, NBA에서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신장 조건도 다른 리그 보다 훨씬 높다. 바꿔 말하면 단순히 키만 커도 이점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며, 키가 작을 경우 리그에서 활약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먹시 보그스가 NBA에서 활약한 단신 선수를 대표하는 아이콘은 아니다. 아이제이아 토마스(174cm), 앨런 아이버슨(183cm)처럼, 먹시 보그스보다 유명하고 더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단신 선수들은 많다.
그러나, 먹시 보그스가 지금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는 그가 다른 단신 선수들 보다 훨씬 작은 ‘160cm’의 키로 NBA에서 활약했기 때문이다. 앨런 아이버슨의 격언인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하는 것’를 가장 잘 실현한 ‘인간 승리’ 자체였다.
(사진=샬럿 호네츠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 ‘팀 스포츠’에 충실한 ‘팀 플레이어’ 먹시 보그스
먹시 보그스는 단신 가드들이 일반적으로 '공격형' '득점형'가드인 것과 달리, 팀플레이에 주력한 '정통 포인트 가드'였다. 먹시 보그스 스스로가 160cm 신장으로 득점형 플레이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 먹시보그스의 ‘팀적인 플레이’는 매우 위력적이었다.
먹시 보그스는 NBA 역사상 최고로 작은 선수였던 만큼, 엄청나게 낮은 드리블을 가지고 있었다. 먹시 보그스는 이것을 활용해 볼을 최대한 빼기지 않으면서 팀원에게 좋은 패스와 어시스트를 공급했고 실책을 범하는 비율을 최대한 낮췄다.
먹시 보그스의 선수 생활 평균 기록에서 알 수 있듯, 먹시 보그스는 커리어 내내 평균 1.6개의 실책밖에 범하지 않았다. NBA 역사상 최고의 포인트 가드 중 하나인 크리스 폴도 평균 커리어 실책이 2.4에 달한다. 먹시 보그스의 신체와 포인트 가드라는 포지션이 끊임없는 견제를 받는 것을 생각하면 경이적인 수치다.
(사진=샬럿 호네츠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 '먹시 보그스'와 '샬럿 호네츠' 운명적인 만남.
먹시 보그스는 1987년 드래프트 1라운드 12번으로 워싱턴 불리츠(현 워싱턴 위저즈)에 지명되며 NBA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당시 먹시 보그스는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에서 활약하며, 1986년 FIBA주관 농구 월드컵에서 우승을 맛본 대학 농구 스타였다. 먹시 보그스는 한발 앞서 워싱턴 불리츠에 뛰고 있던 ‘NBA 역대 최장신’ 매뉴트 볼과 함께 많은 이슈를 만들었다.
하지만 먹시 보그스의 커리어는 첫해는 실망스러웠다. 작은 키를 이기지 못한 채 ‘마스코트’란 조롱을 받는 그저 그런 선수로 남을 것만 같았다. 먹시 보그스의 작은 신장은 워싱턴 불리츠에 믿음을 주지 못했다. 먹시 보그스는 많은 이슈와 달리 적은 경기에만 출장했고 제한된 기회를 얻었다.
그러던 와중,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샬럿에 NBA 연고 팀이 새로 생기면서 확장 드래프트가 실행됐고, 먹시 보그스가 신생팀 ‘샬럿 호네츠’에 지명된 것이다.
샬럿 호네츠로 이적한 첫 시즌, 보그스는 여전히 벤치 자원으로 출장했으나, 조금 더 선발로 경기를 소화할 수 있었다. 성적도 소폭 상승하며 79경기에 출전해 7.4어시스트를 기록한다.
NBA와 샬럿 호네츠에 자리 잡기 시작한 먹시 보그스는 1992-93시즌, 알론조 모닝, 델 커리, 래리 존스와 함께 대폭발하며 ‘말벌 군단’의 진격을 이끈다. 팀은 창단 첫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플레이오프 2라운드까지 진출하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먹시 보그스는 80경기를 선발로 소화해 평균 10득점-8.8어시스트-3.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프로 생활 처음으로 시즌 평균 두 자리 득점을 달성한다.
먹시 보그스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1993-94년 한 단계 더 발전한다. 팀은 동부 리그 9위를 기록하며 아깝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먹시 보그스에게는 최고의 시즌이었다. 먹시 보그스는 이 시즌에 10.8득점-4.7리바운드-10.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시즌 더블더블을 달성한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준 팀이자, 분신 같은 샬럿 호네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먹시 보그스는 샬럿 호네츠의 초기, 프랜차이즈의 정체성 같은 존재였다. NBA 입성 초기 ‘마스코트용 선수’란 조롱을 받았던 선수, 먹시 보그스는 샬럿 호네츠에서 ‘호네츠’라는 이름에 걸맞은 ‘진짜 마스코트’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