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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정주영 창업회장 서거 25주기 추모 음악회 개최

2026-02-26 09:07:33

『아산 정주영 서거 25주기 추모 음악회 : 이어지는 울림』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는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
『아산 정주영 서거 25주기 추모 음악회 : 이어지는 울림』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는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
[빅데이터뉴스 박은주 기자] 현대자동차그룹 정주영 창업회장 서거 25주기를 맞아, 시대를 초월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아산 정주영 창업회장의 정신이 음악으로 재조명됐다.

현대차그룹은 『아산 정주영 서거 25주기 추모 음악회 : 이어지는 울림』을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했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대담한 비전과 불굴의 의지, 사람 위한 혁신으로 대한민국 산업을 개척한 대표적인 경영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불가능해 보이던 영역에 과감히 도전해 새로운 길을 열었으며, 그 길의 끝에는 항상 ‘사람’과 ‘국가’가 있었다.

현대차그룹은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앞서서 길을 개척한 정주영 창업회장의 삶과 철학이 세대를 넘어 현재에 더 큰 울림으로 공명하고, 인류 사회를 위한 혁신으로 확장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며, ‘이어지는 울림’이라는 주제로 추모음악회를 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선우예권, 조성진, 임윤찬 등 네 명의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참여해, 정주영 창업회장의 삶과 정신을 피아노 선율로 풀어냈다.

이번 추모 음악회에는 정·관계, 재계, 사회 각계의 주요 인사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주영 창업회장 후손들, 현대차그룹 임직원 등 총 2,500여 명이 참석했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을 통해 후원하는 미래 인재들과 소방공무원, 국가보훈부, 아동보호전문기관, 사회복지단체 등 공익에 기여하는 인사들도 초청됐다.

정의선 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참석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번 추모 음악회는 할아버님께서 남기신 깊은 ‘울림’을 기리기 위해 준비했다”고 밝혔다.

정의선 회장은 “할아버님의 신념과 모든 도전은 ‘사람’에서 시작되었다”면서 “‘사람’의 가능성을 믿으셨고, ‘사람’을 위한 혁신을 이루셨다”고 강조했다.
정의선 회장은 이어 “25년이 지났지만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해 있는 지금 그 울림은 저와 우리 모두에게 더욱 크게 다가오며, 많은 지혜를 배운다”고 말하고 “앞으로도 할아버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겠다”며 ‘사람을 위한 혁신’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와 함께 정의선 회장은 “몇 년 전 김선욱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님과 이번 네 대의 피아노 연주회를 기획하게 됐다”며 “제가 만약 할아버님께 연주회 내용을 여쭸으면, ‘이봐! 뭘 망설여, 해 봐!’라고 하셨을 것”이라고 정주영 창업회장을 추억했다.

음악회는 한 대의 피아노에 김선욱, 조성진이 나란히 앉아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을 연주하며 시작됐다. 이어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2번’을 선우예권, 임윤찬이 연주했고, 네 명의 피아니스트가 함께 네 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된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리스트의 ‘헥사메론’을 선보였다.

네 명의 피아니스트는 정주영 창업회장이 사람들을 위해,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굳은 신념으로, 불가능에 도전하며 이룬 성취는 물론 지금 세대에 주는 희망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또한 피아노 네 대의 앙상블로 추모 음악회의 대미를 장식하며, 개인의 도전이 사람들과의 동행과 조화로운 울림으로 확장됨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김선욱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는 “이번 추모 음악회는 한 시대를 이끌었던 정주영 창업회장을 음악으로 다시 마주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말보다 오래 남는 음악을 통해 그분의 삶과 정신, 그리고 그분이 남긴 시대의 무게를 관객들과 함께 조용히 되새길 수 있어 더욱 의미 깊었다”고 말했다.

또한 “네 명의 피아니스트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호흡 속에서 무대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던 시간 또한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라며 추모음악회에 함께 한 의미를 밝혔다.

◇ 정주영 창업회장, 대담한 비전·불굴의 의지·사람 위한 혁신으로 한국 산업 발전의 길 개척

세계적 영향력이 큰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 뉴스(Automotive News)」는 지난해 정주영 창업회장 - 정몽구 명예회장 - 정의선 회장 등 현대차그룹 3대(代) 경영진을 ‘100주년 기념상(Centennial Award)’ 수상자로 선정했다. 「오토모티브 뉴스」는 3대(代) 경영진에 대해 “독창적인 아이디어, 창의적인 사고,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굳은 의지로 세계 자동차 산업의 지형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산업화 및 경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평가의 중심에는 정주영 창업회장으로부터 이어져온 헤리티지가 자리잡고 있다.

가난한 농사꾼의 첫째로 태어난 정주영 창업회장의 시작은 맨손이었다. 부두 하역 노동자, 건설현장 일용직, 공장 잔심부름꾼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성실함과 신용으로 인수한 쌀가게는 일본 총독부의 쌀배급제로 인해 문을 닫아야 했고, 전 재산과 사채까지 얻어 투자한 자동차 정비공장은 개업한지 한달도 안 돼 화재로 잃고 빚더미에 앉았다. 새롭게 시작한 정비공장과 토건회사도 6.25전쟁으로 자산을 잃고 부산 피난지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이러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해, 결국 건설, 자동차, 조선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일궈내며 한국 경제의 산업 지형을 변화시키고, 국가 경제의 고비마다 혁신으로 돌파구를 열며,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택하다

"나의 관심사는 이 나라를 보다 균형 있게 발전시켜 보다 충실하고 질 높은 번영으로 이끌어 영광스러운 국가, 자랑스러운 민족으로 만드는 것에 내가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가에 있다"

창업회장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中

‘현대(現代)’라는 사명에는 1940년대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 현대화를 지향해 모든 사람들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주영 창업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담겨 있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1946년 자동차 정비업체인 「현대자동차공업사」, 1947년 건설사인 「현대토건사」를 설립했다. 1950년 두 회사를 합병해 「현대건설 주식회사」를 창업하고, 전쟁 이후 다리, 댐, 발전소, 도로 등을 건설하며 국토 재건과 경제 부흥을 위해 힘을 쏟았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항상 눈앞의 이익보다는 어렵더라도 장기적으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정주영 창업회장이 독자 기술 확보와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원과 기술이 부족한 국가에서 기업이 더 발전하고 궁극적으로 국민들이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 자립과 글로벌화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전후 낙동강 고령교, 한강 인도교, 인천 제1도크 등 복구공사, 비료공장, 화력발전소, 댐 건설 등 국가 재건 사업을 수행하면서도 미국·일본 등 선진업체의 단순 하도급이 아니라 자체 기술력 확보에 매진했다.

또한 1960년대 당시 정부 발주공사에 의존하고 있던 국내 건설 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해외로 눈을 돌려 한국 역사상 최초 해외 공사인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했다.

특히 1970년대 세계 오일쇼크로 한국 경제가 외환 부족 등 큰 위기에 빠졌을 때 정주영 창업회장은 중동건설 시장에 진출해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산업항 공사 수주를 성공시켰다. 총 공사금액만 한국 정부 한해 예산의 약 20%인 9억3천만달러의 대규모 역사(役事)로, 국가 외환 부족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후 한국 건설사들의 중동 진출을 이끄는 교두보가 되었다.

정주영 창업회장이 자동차기업을 설립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국토에 길을 만들고 그 길 위를 달리는 자동차를 생산해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생필품도 부족하던 시절 사람과 물류의 자유로운 이동이 중요하다는 점을 앞서 꿰뚫어본 것이다.

1967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한 후 정주영 창업회장은 해외 메이커의 단순 생산기지라는 쉬운 길을 거절하고, 자동차산업 불모지인 한국에서 독자 모델 개발과 기술 국산화라는 험난한 길을 선택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한국 최초 대량 양산형 고유모델 포니 개발을 성공시키고, 이후 수출 시장 개척, 제품 라인업 확대, 파워트레인 독자 기술 확보, 부품 밸류 체인 국산화 등을 통해 기존에 없는 새로운 길을 만들며, 한국 자동차산업의 단단한 기반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정주영 창업회장은 이 땅의 청년들을 위한 수많은 일자리와 성장의 기회를 창출해냈다.

◇ 굳은 신념과 실행력으로 기적을 현실로 구현하다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든 '반드시 된다'는 확신 90%에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로 완벽한 100%를 채우지, 안 될 수 있다는 회의나 불안은 단 1%도 끼워 넣지 않는다"

창업회장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中

정주영 창업회장의 삶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에도 주저하지 않고 도전해 길을 만드는 여정이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을 때 “이봐, 해봤어?”라고 말하며, 치밀하게 계획하고 직접 도전해 성공시켰다.

전 세계의 유수 건설회사들이 참여한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항만 공사 수주에 도전했을 때도 성공을 낙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술, 자본, 해외건설 경험 등 세계적 건설사들에 비해 열세였고, 입찰 보증금조차 없었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면밀한 조사와 검토, 가능한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뒀다.

조선소 건설도 ‘난관’의 연속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차관을 거절당하고, 사기를 당할 뻔도 한 정주영 창업회장은 더욱 치열하게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한 실행 끝에 능력 있는 차관 주선인을 만나고, 영국의 A&P 애플도어사 및 스코트 리스고우 조선사와 기술 협조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자신의 조선업에 대한 거대한 비전으로 영국 은행 및 신용보증기관, 선주를 설득시켜 조선소 건립을 성사시켰다.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지폐와 울산 미포만 백사장 사진은 정주영 창업회장의 비전과 한국의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88 서울올림픽 유치도 대표적인 사례다. 정주영 창업회장이 올림픽 유치 민간추진위원장으로서 IOC 총회가 열리는 독일 바덴바덴에 도착했을 때 당시 한국 IOC 위원이 예상한 한국 우호표수는 총 82표 중 3~4표에 불과했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매일 전략회의를 진행하며, 각국 IOC 위원을 설득하기 위한 전략을 짜고, 관계자들 및 교민들, 현대 임직원들과 발에 땀이 나도록 실행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IOC 위원들을 감동시키기 위한 꽃바구니를 수급하기 위해 꽃밭 전체를 사는 결정도 내렸다. 이같은 도전적 실행으로 서울은 52대 27로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반전 드라마를 현실로 옮겨 썼다.

◇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틀을 깨는 발상으로 전례 없는 길을 열다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이 무한한 인간의 잠재력은 누구에게나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목표에 대한 신념이 투철하고 이에 상응한 노력만 쏟아 부으면 누구라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이 땅에 태어나서> 中

정주영 창업회장은 난관이 있을 때마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과감하게 틀을 깨며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때로는 그 문제를 새로운 사업의 기회로 발전시켰다.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진행하던 정주영 창업회장에게 1973년 오일쇼크라는 위기가 닥쳤다. 수주했던 12척의 초대형 원유운송선(VLCC) 가운데 3척이 취소 또는 인수 거부됐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현대가 부담해야 했다.

모두가 이로 인한 손실을 걱정할 때 정주영 창업회장은 해운업 진출이라는 또 다른 도전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인수 거부된 한 척과 발주 취소된 두 척을 진수시켜 3척으로 상선회사를 설립해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산업항 공사 당시, 공사 경험이 없던 현대건설은 해외 업체의 해상 중기 장비를 빌려 사용해야 됐는데 그 과정에서 고의적인 지연 등으로 납기를 맞추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업계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한, 대규모 해양수송작전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해상장비, 철 구조물, 콘크리트 슬래브 등 모든 기자재를 한국에서 제조해 대형 바지선으로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운송한 것이다. 오차 하나 허용치 않는 현대 임직원들의 치밀함과 울산조선소의 제작 능력을 신뢰했기에 나온 결정이었다. 이를 통해 정주영 창업회장은 공기를 단축하며 시공 능력을 과시했을 뿐 아니라 국내 중공업 및 해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성과도 거뒀다.

서산 간척지 유조선 공법은 정주영 창업회장이 창의적인 생각으로 난관을 해결한 대표적인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좁은 국토를 한 뼘이라도 더 늘려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도, 기업 경영으로 고용을 창출하고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나라를 살찌게 하는 일 못지 않게 보람 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서해안 천수만 간척 사업에 나섰다.

하지만 서해안이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물살이 거세, 공사가 난제에 부딪혔다. 양쪽에서 쌓아온 두 제방을 연결하는 최종 물막이 공사를 위해 여러 방안을 추진했지만 초속 8m의 급류로 인해 자동차 만한 바위 덩어리도 물살에 쓸려 내려갔다. 그때 정주영 창업회장은 고철로 쓰기 위해 울산에 정박시켜 놓은 대형 유조선을 떠올렸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직접 유조선에 올라 현장 사람들을 진두지휘하며 양쪽 제방 사이에 유조선을 가라앉히고 방조제 건설을 성공시켰다. 일명 ‘정주영 공법’으로 불리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유조선 공법의 탄생이었다.

◇ 정주영 창업회장의 선한 영향력이 세대를 넘어 미래까지 이어지다

"사람은 의식주를 얼마나 잘 갖추고 누리고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얼마만큼 미치면서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

<이 땅에 태어나서 中>

긍정적 사고와 과감한 실천,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노력으로 대한민국 경제와 산업의 큰 기틀을 세운 건설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조적 기업가 정신의 표본, 민족과 이웃을 내 몸처럼 아꼈던 진정한 인본주의자, 평생 근면·검소·친애의 삶을 살았던 부유한 노동자인 정주영 창업회장의 정신은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해 모든 ‘현대’ 이름을 단 기업들에 새겨져 인류, 사회를 위해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박은주 빅데이터뉴스 기자 new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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