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최기호 창업 회장 별세 후 최씨‧장씨 일가 간 기업 정리 1989년 마무리 직후부터 양 집안 계열사 간 인력 교류는 중단 ‘영풍’ 지붕 아래였지만 소유주긴 지분 관계 빼면 별개 사이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서 생산해 적치장에 쌓아둔 아연괴(왼쪽)과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만들어 창고에 놓여있는 아연괴. 두 회사가 만든 아연괴는 동일한 제품이라 함께 녹여서 사용할 수 있지만, 한 지붕 아래서 같은 아연을 생산한하던 고려아연과 영풍은 경영권 분쟁 여파로 사실상 섞일 수 없는 남이 되었다. 사진= 고려아연, 채명석 기자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과 영풍을 두고 세간에선 76년 아름다운 동행이 깨졌다고 안타까워하지만, 실상 두 회사는 37년 전에 각자의 길을 걷는 남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 세대 때 맺은 물리적‧화학적 동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두 기업이 굳이 한 지붕 아래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고려아연 경영권 다툼의 의도는.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를 탄생시킨 영풍과 석포제련소가 시간이 지나 자사보다 더 성장한 고려아연을 억지로 통제권 아래 두려고 하려고 억지를 부리는 사건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더군다나 영풍은 자력으로 고려아연을 빼앗을 여력이 부족해지자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를 우군으로 끌어들여 “내가 갖지 못하면 너도 가져선 안 되는” 식의 막장 싸움으로 변절시켰다.
재계에 따르면, 영풍그룹은 1980년 고(故) 최기호 창업 회장의 별세 후 장씨와 최씨 일가가 서로가 관리할 계열사의 경영권 이전 작업을 추진했고, 1989년 아를 분리 작업을 완료했다. 이후 두 집안 기업은 간 인사 교류를 중단했다. 경영진은 물론, 생산에 참여하는 기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1989년대 영풍그룹의 지배구조를 다뤘던 언론 보도에서 언급되어 있었다. 이후의 과정 동안 인력 교류가 다시 이뤄졌는지를 알아본 결과, 그때의 결정이 지금 유효함을 확인했다,
영풍이라는 한 집안에 살고 집 주인끼리 아는 사이인 건 맞지만, 같이 사는 사람들은 출입구가 달라 마주칠 일이 없고, 혹시 만나더라도 가벼운 인사나 하는 가벼운 사이로 지내왔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씨 집안과 장씨 집안사람 간 교류는 경영권 이전이 이뤄진 1989년부터 ‘물리적 동행’은 끝났고 현재 37년이 지났다. 근로자의 평생 근로기간을 30년으로, 이를 한 세대라고 한다면, 이미 1세대가 단절된 것”이라면서, “그동안 영풍그룹으로 살아온 것은 오너 일가 간 계열사 지분을 교차 보유라는 ‘화학적 동행’ 때문이었을 뿐, 언제 이별해도 무방했다”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장씨 일가나 최씨 일가 모두 현재의 주력사업은 아연을 중심으로 한 비철금속 제련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남처럼 각자 사업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전자의 생산기지는 울산광역시 온산제련소, 후자는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제련소다.
재계는 같은 사업을 주력으로 취하는 가운데에서도 인사 교류가 없었다는 점을 놀라워한다. 제조업 핵심 사업장은 생산 공장이고. 공장에는 최고의 인재와 최신의 기술을 투입한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만큼 높은 품질로 불량품 없이 대량생산 하는 등 공정 기술을 진화하는 것이 제조업체의 숙명이다.
같은 그룹 내에서 어느 한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성과 수익성 등이 뒤처지는 공장이 있으면 우월한 공장의 기술자와 기능 인력들이 파견되어 정상화하는 일이 다반사다. 특히 연간 아연 생산량 기준으로 온산제련소는 단일 제련소로 세계 1위, 석포제련소는 4위에 올라와 있는 대규모 사업장이다. 생산 공장에서 제품 생산이 문제가 발생하면, 그룹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
양사 간 단절의 결과는 석포제련소가 온산제련소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환경 문제 사고가 잦은 이유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경영권 분쟁 이전부터 석포제련소는 지속적으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이에 따라 환경단체들로부터 공격을 받더니 급기야 경영진이 구속수감되고 제련소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영풍과 석포제련소는 고려아연과 온산제련소에 기술적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구성원들 사이에선 동료의식을 갖고 화합의 손을 내밀기 마련이지만,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자 영풍은 석포제련소 노동조합까지 동원해 최윤범 회장과 고려아연에 흠집을 내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포항제철소 기술자들이 광양제철소 공사에 참여해 성공적인 준공과 가동을 이끌었고, HD현대그룹 계열 조선사들도 인력 교류를 통해 최고의 생산성과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영풍그룹도 창업 회장 시기에는 그랬다, 온산제련소 건설 초기에는 석포제련소 기술자들을 파견해 성공적인 준공과 가동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는 1989년 이후로 중단됐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석포제련소는 온산제련소의 앞선 기술을 제공받아 공정 기술의 선진화를 도모할 수 있었지만, 그런 협업도 불가능한 사이가 됐다. 현실이 이렇다면, 고려아연과 영풍은 더 이상 같은 기업이라고 보긴 힘들다.
산업계 관계자는 “30년 넘게 제조‧생산 인력 교류가 단절되었다는 것은 석포제련소와 온산제련소의 생산 공정이 완전히 독립되었고, 양 제련소 인력이 교차 교류한다고 해도 적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제조업체의 인력 교류는 서로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인데, 영풍과 고려아연은 그렇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산업계 관계자는 “석포제련소 문제를 영풍과 고려아연 경영진, 기술자들이 머리를 맞대어 방법을 모색했다면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영풍 측은 그러지 않았고,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을 통한 배당금으로 영업이익 적자를 메우는 데 급급했다. 이는 장형진 고문을 비롯한 영풍 경영진의 무책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이들과 손잡고 고려아연을 공격하는 MBK도 주식에만 초점을 맞출 뿐, 새 주인 후보로서 자격이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