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현대자동차의 자동차 수출이 본격화하고 현대상선이 자동차 수송에 선도적으로 뛰어든 이후 자동차 수송 시장은 현대상선의 중요한 사업 영역으로 자리를 잡았다. 현대차 엑셀, 쏘나타뿐 아니라 기아자동차 프라이드, 대우자동차 르망 등 한국산 자동차의 북미·중남미·중동 수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자동차 수송 시장도 동반하여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중에서도 현대차의 엑셀 모델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미주 지역에서만 해도 1986년 23만9000여 대, 1987년 36만5000여 대, 1988년 37만7000여 대가 팔릴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수출 초기에는 물량이 많지 않아 일본 선사들에 의존하거나 국적선사의 벌크선·컨테이너선에 차량을 혼재해 수송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현대상선이 자동차 전용선 운항을 시작한 이후에는 전용선을 통해 더욱 원활한 수출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자동차 수출은 1987년 이후 국내에서는 노사분규가 격화되고 미국에서의 경기 침체 악재가 겹치면서 급감하기 시작했다. 1989년 현대차의 수출은 20만여 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국내 자동차업계 전체 수출은 1989년 34만1500여 대에서 1990년 32만1700여 대에 그치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그 바람에 현대상선의 자동차 수송 사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1989년의 자동차 수송량은 전년도 36만5000여 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5만2000여 대에 그쳤고, 1990년에는 14만1000여 대로 더 감소했다. 이로 인해 자동차 수송부문의 매출액은 현저하게 감소했다.
자동차 수송은 다른 벌크화물 수송과는 달리 항로마다 5~7척의 자동차 전용선을 투입해야 한다. 더욱이 한국처럼 전 세계 여러 나라를 상대로 수출하는 경우에는 대규모 선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90년대 초반 기준으로 20척 이상의 자동차선을 보유한 업체는 전 세계적으로도 일본의 3개 선사, 스칸디나비아의 3개 선사, 그리고 현대상선 등 7개 선사에 불과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손꼽을 만큼 대규모의 선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주 수출이 급감함에 따라 현대상선의 상당수 자동차선이 자칫 항해를 멈출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현대상선은 최대 13척에 이르는 잉여 자동차선을 일본, 노르웨이 등의 선사와 장단기 계약을 맺고 대선(貸船)하는 비상조치를 취하며 경기 침체 상황에 대응했다.
미주 시장에 대한 자동차 수출이 급감하는 비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대차는 1990년부터 수출시장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덕분에 유럽·중남미·중동·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서 자동차 수출이 증가세를 보이며 점차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특히 유럽 지역에서의 상승세가 눈에 띄었다.
현대상선은 현대차로부터 유럽 및 기타 지역에 대한 배선권을 인수해 1992년 1월부터 현대차가 수출하는 세계 전역으로 자동차를 수송했다. 이전에는 미주 지역은 현대상선이 담당하고 수송량이 많지 않은 유럽과 기타 지역은 주로 일본 선사의 선복을 스페이스 차터(Space Charter) 하여 수송했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배선권을 확보한 이후 수송 물량은 빠르게 증가했다. 이에 그동안의 대선 영업을 종료하고 1992년과 1993년 사이에 대선했던 선박들을 모두 돌려받았다. 그리고 이 선박들을 미주를 비롯해 유럽·중남미·중동·아시아 등의 지역에 투입하여 수송망을 확대했다. 1992년에 유럽 서비스를 시작했고, 1993년 4월에는 중국, 8월에는 동남아·중동·아프리카, 그리고 9월에는 중남미 서안으로 확대했다. 1995년 말에는 세계 195개국으로 자동차 수송망을 확대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월드와이드 서비스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현대차 일변도의 수송 영업에서 벗어나 화주 다양화 전략을 추진하여 기아차, 대우차, 쌍용자동차, 아세아자동차 등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자동차 수송도 확대했다. 국내 업체뿐만 아니라 미쓰비시, 마쓰다, 다이하쓰, 혼다, 도요타 등 일본 업체, GM, 포드(Ford) 등 미국 업체, 벤츠(Benz), BMW, 볼보(Volvo) 등 서유럽 업체, 그리고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인도 등 세계 각국의 주요 자동차 업체들도 화주로 영입했다.
미국 포드자동차의 수출용 픽억트러들이 현대상선의 자동차운반선에 싣기 위해 부두에 주차해 있다. 사진= HMM 50년사
현대상선의 자동차 수송 실적은 1991년에 21만여 대 수준에서 1993년에는 31만2000여 대, 1994년 57만여 대로 다시 증가했다. 한동안 감소세를 보였던 미주 지역으로의 수송량도 1994년 28만4000여 대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자동차 수송 사업은 전에 없던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자동차 수송 물량이 급증하고 화주도 다양화하면서 현대상선은 급기야 선박이 부족한 상황을 맞게 되었다. 사선(社船) 18척, 용선(傭船) 12척 등 30척을 투입하며 수송에 총력을 다했지만, 물량을 모두 소화하기에는 선박 수 자체가 부족했다. 게다가 개발도상국으로 향하는 품목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상용차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데, 기존의 선박은 PCC(Pure Car Carrier, 자동차 전용 운반선) 타입으로 데크 높이가 1.7m에 불과해 트럭이나 미니버스 등의 차종은 적재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다.
이에 현대상선은 자동차 수송선을 더 늘리기로 했다. 동시에 상용차도 운송할 수 있도록 자동차 수송선을 다양화하기로 했다.
먼저 1993년에는 아세안 시리즈라고도 부르는 4300CEU(Car Equivalent Unit, 자동차 1대를 실을 수 있는 공간, 통산 10㎥)급 PCTC(Pure Car & Truck Carrier, 자동차와 트럭 전용 운반선) 자동차선 4척을 현대중공업에 발주했다. 이 선박들은 1994년 7월 ‘아세안 뷰티(Asian Beauty)’호, 10월 ‘아세안 글로리(Asian Glory)’호, 1995년 6월 ‘아세안 썬(Asian Sun)’호, 9월 ‘아세안 벤처(Asian Venture)’호로 명명돼 차례로 투입되었다.
세계 7대 자동차 선사 선단 현황(1995년 7월 기준, 자료= HMM 50년사
이에 따라 1995년 기준으로 현대상선의 자동차 선단은 수송 대수 78만여 대를 기록하며, 세계 자동차 수송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의 NYK, MOL, K-Line과 함께 세계 4대 자동차 선사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상선은 1993년 하반기부터 1995년 상반기까지 약 2년 사이에 무려 17개의 자동차선 항로를 개척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