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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중형조선-하] 마스가, K-중형조선업 성장 지렛대로 활용해야

2026-02-25 14:19:01

‘품질’은 선박 부가가치와 상관 없는 한국 조선업의 강점
미국 조선업 지원 프로그램의 핵심은 중형 선박 선대 확충
국내 중형 조선사의 역할 많아, 포기 대신 키워서 열매 따야

 유상철 HJ중공업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등 회사 관계자들이 2026년 2월 12일 HJ중공업이 진행하고 있는 MRO 사업 점검을 위해 부산 영도조선소를 방문한 짐 굿하트 MSC 부국장 등 미국 해군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HJ중공업
유상철 HJ중공업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등 회사 관계자들이 2026년 2월 12일 HJ중공업이 진행하고 있는 MRO 사업 점검을 위해 부산 영도조선소를 방문한 짐 굿하트 MSC 부국장 등 미국 해군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HJ중공업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미국의 조선산업 부활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이 제안한 마스가(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대한민국 중형조선업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낼 수 있는 환경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방위산업과 마스가 열풍을 타고 K-조선업이 부각되고 있으나 이런 가운데에서도 중형 조선사의 생존은 관심밖에 머물러 있다. 미국 정부가 필요로 하는 선박은 결국 중형 선박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 크기 선종의 건조에 HD현대중공업이나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빅3가 직접 참여하기는 시장 크기가 작다. 대형선박을 잘 만들어왔다고 중형 선박도 잘 만들 것이라는 선입견은 통하지 않는다. HD현대중공업이 HD현대미포를 흡수합병하고, 삼성중공업이 HSG성동조선과 협업을 한 것은 중형 선박 건조를 노린 경험치 쌓기 의도가 강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중형조선소가 역량을 키우려면 생존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려면 “이들이 정말로 경쟁력을 상실한 사양산업인가?, 중형 조선사에서 건조한 선박은 저부가가치 제품인가? 대형·고부가가치 선박을 만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 직전까지 광풍이 불었던 전 세계 조선·해운산업은 금융위기를 계기로 불황으로 급전직하했고, 한국 중형조선소는 몰살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속속 문을 닫았다. 원인과 과정은 수많은 기관과 언론 보도를 통해 제기됐으니 여기서 복귀할 필요는 없다. 다만, 업계 종사자들은 이들이 지적한 중형조선업의 문제점과 제시한 생존 방안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매우 무책임한 말장난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K-조선의 최대 강점은 선박의 ‘품질’이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선박도 중고 가격의 상각률로 조선소의 능력을 측정하는데, 한국산 선박은 중고 선박 시장에서 최고 가격대를 형성한다고 한다. 최초 건조비는 비싸지만, 운항 유지비가 상대적으로 낮아 10년 이상 운항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예를 들어 삼성중공업이 1979년 처음으로 해외 선주로부터 수주해 1980년 인도한 두 척의 석유시추보급선 가운데 1호선 ‘스미트 로이드 118(SMIT LLOYD 118)’가 40년 넘게 운항하며 노익장을 과시한 적이 있다.

조선소와 선종에 관계없이 한국에서 건조한 선박은 일정 수준의 품질을 보장한다. 조선 빅3가 성장하면서 얻은 성과물들이 인력 이동 등을 통해 중형조선소에 이식되면서 자연스레 끌어올린 경쟁력이다.
한국 조선업에 중국과의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고부가가치 선박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고부가가치론은 비단 조선뿐만 아니라 모든 업종에 걸쳐 전문가들이 주문하는 생존 방안이다. 그런데 고가·고부가가치 선박의 수요는 제한적이라는 점은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고부가가치 선박을 만드는 기반은 품질 좋은 범용 선박 건조 역량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구구단을 모르면서 수학 천재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K-조선산업이 수출시장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일정 수준의 내수가 뒷받침되어 주어야 한다. 중국이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뒷배가 되었고, 정상에서 내려와 퇴보했지만 일본이 아직도 조선업 명맥은 이어가고 있는 배경은 지속적인 내수 수요 덕분이다. 내수시장에서 조업 물량을 확보하고 조선소를 지속적으로 운영해 이익을 실현하면, 수출 선박은 이익을 낮추더라도 경쟁할 수 있는 가격으로 입찰에 나설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은 정부가 지국 해운사가 자국 조선사에 선박을 발주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 조선사들은 내수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 HMM을 제외한 국내 해운사도 중소 규모라 신형 선박을 발주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해 중국 조선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부가 정책금융 기관 등을 통해 건조비를 지원해 한국 조선사에서 건조를 유도해야 하는데,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협정 등 국제 규제를 위반하는 직접 보조금에 해당해 제재를 받을 수 있다며 난색을 보이기만 하고, 방법을 개발하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불만 사항이다.
합법적인 절차로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했지만, 대형 선사인 HMM의 건조비 지원에 집중됐고, 중형 해운사와 조선소는 얻을 수 있는 혜택이 거의 제한적이다. 심지어 HMM이 해양진흥공사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선박을 중국 조선소에 발주한 적이 있다. 법정한도 내에서 국내 조선소의 건조비 요구를 맞출 수 없을 뿐 아니라, 국내 조선소도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무조건 HMM이 원하는 건조비를 맞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출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밀리고, 내수의 지원도 요원한 한국 중형조선소는 만성 경영난에 빠져 있다. 안타까운 점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국에서 문 닫은 조선소에 근무했던 인력 중 상당수가 중국 조선소로 이직해 한국의 품질 노하우를 전수했다. 10여 년이 지난 현재 중국 조선소들은 한국처럼 품질 좋은 선박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퇴출 위주의 구조조정을 강제한 결과는 부메랑이 되어 한국 조선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백악관은 2월 13일(현지시간) 미국의 조선 역량 재건 방안을 담은 ‘미국의 해양 행동계획’(AMERICA'S MARITIME ACTION PLAN·이하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군함 건조와 유지·보수·정비(MRO) 이슈에 묻혀 있지만, 미국 정부의 본질적인 목표는 낙후된 자국 조선·해운산업을 개혁하려는 것이다.

행동계획은 미국 조선산업 현실에 대해 “신규 상선 중 미국에서 건조되는 선박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총 66개의 조선소(활발히 운영 중인 조선소 8곳, 건조 시설을 갖춘 조선소 11곳, 드라이도크를 보유한 수리 조선소 22곳, 상부 구조물 수리 조선소 25곳)만으로는 미국이 국가적 우선순위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속도로 국내 조선산업을 확장할 능력이 없다”며, “전략적 경쟁국들은 시장을 장악하고 미국 생산 비용의 극히 일부만으로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심각한 안보 및 공급망 의존 문제를 일으킨다. 자립 가능한 국내 조선산업은 국가 안보와 경제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국은 해외 시장과의 무역을 거의 전적으로 외국에서 건조되고, 외국 선원이 탑승하고, 외국 국적을 단 선박에 의존하는 것도, 미국이 공해상에서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선박을 MIB(해군정보국)가 건조하고 유지할 수 없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수단을 재건하고자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길이 400피트(약 122m) 이상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미국 조선소는 단 8곳뿐이며, 길이 400피트 이상의 선박 수리 기지는 드라이도크 설비를 갖춘 22개의 조선소와 상부 구조물 수리 설비를 갖춘 25개의 추가 조선소로 구성되어 있다. 행동계획은 기존 조선소들이 혁신적인 신조 기술이나 효율성 향상을 추구할 유인은 제한적이며, 높은 초기 자본 비용으로 인해 신규 조선소 건설이 저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발간한 ‘2024년 해운 보고서(Review of Maritime Transport 2024)’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세계 주요 국가 지배상선대(Controlled Fleet, 선사의 국적을 기준으로 해당 선사가 직접 운영하거나,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모든 선박의 선복량을 합산한 지표) 순위에서 미국은 1780척·4972만3000DWT(재화중량톤수)로 13위였다. 이 가운데 외국적선은 1010척·3924만6000DWT로 비중이 56.7%Ⅲ78.9%에 달한다. 한국은 1678척·9694만1000DWT로 6위였다. 외국적선은 852척·7704만5000DWT로 비중은 50.8%·79.5%였다.

척수는 미국이 한국보다 많지만 선박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양, 즉 척당 평균 선복량은 한국이 5만7800DDWT로 수프라막스급(Supramax, 5만~6만t)급 벌크선인 데 반해 미국 2만7900DWT로 소형 화물선 크기에 불과했다. 한국의 선박이 미국에 비해 두 배 이상 크다는 것인데, 이처럼 작은 선박은 태평양이나 대서양 등 대해가 아닌 미국 내 또는 남북 아메리카 대륙을 오가는 용도로만 쓰인다. 세계 최대 크기의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과 구축함 등을 건조하는 최강의 군함 선단을 운용하는 국가답지 않게 상선 시장은 퇴보했다.

미국 내 해운 항만 인프라 여건상 대형 선박을 운용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2만4000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급 초대형 컨테이너 운반선은 미국 항구에 접안할 수 없다. 길이 300m에 달하는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안벽의 수가 적은 데다가, 컨테이너 화물을 싣고 내리는 크레인의 길이도 선박의 폭보다 작아 작업이 불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항구마다 선박이 가득해 화물을 싣고 내리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크다.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존스 법으로 인해 미국 내를 항해하는 상선의 선령과 항만 인프라가 모두 선령이 오래되어 효율 저하를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백악관 행동계획은 조선소 시설의 현대화, 용접공 등 기능 인력 양성과 함께 해양 인프라 선진화도 제안하고 있다. 상선 건조·운항 경쟁력을 회복해야 군함 건조도 효율을 높이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조선업계 전문가는 “트럼프 행정부의 개혁 목표는 조선·해운산업 발전을 가로막아 왔던 미국 내 기득권 세력들을 끊기 위한 것으로, 마스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존스 법을 폐지 또는 완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그 일환으로 보인다”라면서, “이러면 국제적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정책과 더불어 한국의 중형 조선소에도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일을 따 먹으려면 우리 정부가 중형조선사들을 보호하고 키워줘야 한다. 미국의 행동계획에서 제안한 정책 내용은 그동안 우리 조선업계가 정부에 요청해 왔던 지원책과 매우 유사하지만 실행한 대책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라면서, “정부가 마스가 프로그램을 발표했을 때 우리 기업들이 매우 허탈해한 이유다. 마스가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은 물론 우리 중형조선업계의 경쟁력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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