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진 고문의 영풍, 고려아연을 최씨 일가에 빼앗겼다며 MBK까지 끌어들여 최윤범 회장 측 퇴출하기에만 역점 창업 세대의 모험과 도전을 통한 혁신의 기업가 정신 희석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 사진= 고려아연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영풍은 고려아연을 키울 수 있는 기업가 정신과 경영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3월 24일 열릴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는 최윤범 회장이 이끄는 현 경영진과 영풍과 MBK파트너스 연합이 내세울 경영인 중 누가 더 회사를 키워낼 수 있는지를 투자자들이 결정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영풍은 위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본격적으로 확산시킨 사람은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슘페터였다. 슘페터는 기업가 정신의 본질을 ‘혁신’이라고 보았다. 기업가의 혁신 활동을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규정했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도 기업가 정신을 ‘위험을 무릅쓰고 포착한 기회를 사업화하려는 모험과 도전의 정신’이라고 했다.
기업은 지속 성장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립 당시 가졌던 기업가 정신을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대한민국도 고도 경제성장의 기저에는 기업가 정신이 있었다. 폐허의 땅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1세대 창업자들의 기업가 정신은 ‘사업보국(産業報國)’이었다. 사회를 위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 즉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라는 정신으로 회사를 만들고 성장시켰다. 이후 한국 기업들은 사업을 통해 나라에 기여한다는 정신을 확장해 산업 생태계를 넓히며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라섰다.
고려아연은 이러한 한국 기업가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최기호 창업 회장이 광산개발과 수출, 비철금속 제련 사업 진출을 통해 세운 사업보국의 초석 위에서 최창걸, 최창영, 최창근 명예회장은 효율적인 역할 분담과 협력 속에 한발 앞선 도전으로 고려아연을 글로벌 넘버원 비철금속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 같은 도전 정신을 이어받아 최윤범 회장은 ‘트로이카 드라이브(Troika Drive)’라는 새로운 동력으로 고려아연을 친환경 에너지·소재 기업으로 다시 한번 혁신시켜 나가고 있다.
고려아연, 나아가 영풍그룹 태동의 초석을 놓은 최기호 창업 회장이 자식들에게 남긴 유훈 가운데 하나가 “손에 쥔 재산을 믿지 마라, 머리에 든 재산은 절대 잃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손재주가 좋고 사업수완이 뛰어났던 그는 유형재산인 ‘돈’보다 ‘지식’, ‘기술’, ‘원칙’, ‘신용’과 같은 무형 재산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었다.
영풍그룹은 최기호·장병희 창업 회장의 동업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최씨 일가는 주로 대외적인 면에 집중했고, 장씨 일가는 내부 살림에 집중했다. 정반대인 성격 차이는 영풍그룹이 76년 동업 경영을 이어온 배경 중 하나였다.
그러나, 오너 3세 경영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차이는 결별에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에선 고려아연의 투자가 상식을 벗어난 과도한 만행이라고 여기고, 최윤범 회장의 신사업 투자를 제동하는 장씨 일가의 영풍이 ‘무차입 경영’,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넌다’는 신중 경영 원칙을 스스로 변질시킨 이기적인 처사라고 지적한다.
기업 내에는 최고경영자(CEO)의 무분별하고 방만한 사업 영역 확장과 비용 낭비를 견제하는 이들이 있어야 건전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가 지나치면 혁신과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눈앞의 이익만 좇는 이들은 사소하다 싶을 정도인 실패 가능성에만 집중해 모험을 동반한 신사업 투자 추진을 거부한다.
계열 분리 전 LG그룹이 동업 경영의 모범 사례다. 지금은 구씨 일가의 LG와 허씨 일가의 GS로 분리했지만, 한 지붕 아래였을 당시, 구씨는 진취적인 도전을 요구하는 사업에 집중했고, 허씨는 그룹 전체의 내실을 다지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이익을 실현하는 사업을 책임졌다. 역할 구분을 분명히 하며 서로를 인정하고 공경했던 두 집안은 계열 분리도 아무 잡음 없이 이뤄내는 아름다운 이별을 만들었고, 지금도 서로의 사업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공생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범LG가와 비교한다면 영풍그룹 최씨 집안의 고려아연이 LG 역할을, 장씨 일가의 영풍은 GS의 구실을 담당해 왔다. 고려아연과 영풍도 LG와 GS처럼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었다. 창업 세대와 오너 2세까지는 동업 경영이 유지됐다.
그런데 3세 시대로 와선 사업 균형이 깨지면서 경영권 분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려아연을 일으킨 것은 함께였지만 성장·발전시킨 주역은 최씨 일가다. 장씨 일가는 지분 구조상 최대 주주의 지위만 갖고 있었다. 경영과 지분의 교차 점유는 영풍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는 함께이기 때문에 존속 가능한 구조다.
그 구조가 깨지니 고려아연은 서로가 주인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장씨 일가와 영풍은 고려아연을 최씨 일가에 빼앗겼다고 여기고, 빼앗기지 않겠다며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를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최악수까지 동원해 최윤범 회장을 퇴출하려고 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주주가치 제고’라는 수식어를 달았지만, 장씨 일가의 본래 목적은 배당금이라는 ‘손에 쥔 재산’을 빼앗기지 않겠으니 ‘머리에 든 재산’이 많은 최윤범 회장을 내쫓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장사꾼 심리를 드러낸 것으로, 재계에서도 장씨 일가의 일탈이 기업가로서 최소한의 도리조차 실천하지 않은 것이라며 불만의 시선을 보낸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벌어지자, 한국 국민은 금 모으기 운동을 진행했다. 이때 고려아연은 부족한 힘이나마 국가 위기 상황 극복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온산 제련소를 개방했다. 임직원들이 하루 2교대로 국민이 모은 금을 제련하면서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탰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고려아연은 온산 제련소를 통해 온 국민의 염원이었던 IMF 조기 졸업에 기여했다.
이 일을 두고 후세는 고려아연이 사업보국 기업가 정신을 적극 실천한 것이라고 회고한다. 장형진 고문의 영풍, 석포제련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장씨 일가와 영풍은 영풍그룹이라는 한 지붕 찬스를 써서 고려아연의 선행에 묻어가는 것이라는 지적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창의와 도전을 통한 혁신 경험과 노하우 없이 대주주라는 이유로 우량 기업을 갖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면서, “영풍이야말로 과거 창업 정신을 망각하고 현재 오너 일가 안위에만 집중하는 구멍가게 기업으로 전락했다. 그들의 과욕이 고려아연을 어떻게 무너뜨릴지는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