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 신청 수차례 했으나 선도업체들의 반대로 좌절 경영난 겪고 있던 고려아연 미주 사업 면허 인수 성공 현대중공업에 2800TEU급 풀컨테이너선 5척 추가 발주 컨테이너 관리 전산화, 정요일 서비스 등 시스템 정비
현대상선의 2800TEU급 풀컨테이너 운반선 ‘현대 챌린저’호가 컨테이너를 싣고 항해하고 있다. 사진= HMM 50년사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해운산업 합리화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현대상선은 오랜 숙원 가운데 하나인 풀컨테이너선사업 진출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1984년 7월과 10월 연거푸 극동~미주 간 풀컨테이너선 정기항로 사업에 참여해 해운항만청에 신청하는가 하면, 면허가 나오면 신속하게 풀컨테이너선을 투입할 수 있도록 대비한다는 취지에서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BBCHP) 방식으로 1552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급 풀컨테이너선을 현대중공업에 발주했다.
그러나 이미 미주 항로에 취항하고 있던 고려해운·대한선주·한진해운 등 3사가 강력히 반발했다. 더욱이 해운산업 합리화 계획의 영향으로 신규 면허 취득 가능성도 희박했다. 이에 현대상선은 기존에 면허를 가진 선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컨테이너선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는 해운산업 합리화 계획에도 부응하는 방식이어서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현대상선은 3사 중 고려해운을 인수하기로 했다. 당시 고려해운은 경영이 어려운 상태였지만, 컨테이너선사로서 합리화 계획에서 합병 선사 그룹에 포함되어 한바다해운을 흡수하고 협성선박·천경해운·동서해운·세양상선 등 원양 선대를 매입하며 삼원선박을 계열 선사로 두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경영악화로 이 계획을 수행할 자금도 없고 대주주의 불화까지 겹쳐 자구 계획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었다.
현대상선은 고려해운과 협상을 벌여 1985년 8월 30일 인수를 위한 기본협정을 체결하고 인수작업을 시작했다. 고려해운 전체 주식의 73.9%를 60억6674만 원에 매입하고 부채 910억 원과 임직원의 고용을 승계하는 조건이었다.
이를 통해 고려해운의 미주 항로 풀컨테이너선 4척과 원양 부정기 살물선(撒物船, Bulk Carrier, 벌크선) 건조 화석, 석탄, 곡물, 시멘트 등 포장하지 않은 벌크를 대량으로 운송하는 화물 전용 선박 6척을 포함해 총 17척 20만3979총톤(G/T)의 선박을 인수했다. 이로써 현대상선은 컨테이너선 사업에 진출하여 글로벌 종합 해운사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고려해운과의 합병 기본계약 체결을 앞두고 현대상선은 컨테이너선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현대중공업에 2800TEU급 풀컨테이너선 5척을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 방식으로 추가 발주했다. 또 고려해운과의 합병계약 체결과 동시에 고려해운의 선박을 수탁 운영하고, 고려해운이 이미 체결하고 있던 한진해운과의 공동운항 방식도 그대로 승계했다.
이를 기반으로 고려해운에서 인수한 1200~1400TEU급 컨테이너선 4척을 미주 항로에 투입해 한진해운의 컨테이너선 7척과 공동운항하며 풀컨테이너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공동운항은 양 사의 배선 스케줄, 기항지, 터미널 등의 이해가 맞지 않아 1년 만에 종료되었다.
현대상선의 2800TEU급 풀컨테이너 운반선. (왼쪽 첫 번째부터 시계방향으로) 현대 익스플로러호, 현대 프런티어호, 현대 파이어니어호, 현대 이노베이터호. 사진= HMM 50년사
한진해운과의 공동운항이 종료되자 현대상선은 본격적인 단독운항 체제로 전환했다. 1986년 6월과 7월에 1552TEU급 풀컨테이너선 퍼시픽 프로그레스(Pacific Progress))호와 퍼시픽 프로스페리티(Pacific Prosperity)호를 인수한 데 이어, 9월부터 2800TEU급 풀컨테이너선 5척을 순차적으로 인수하여 투입한 것이 단독운항을 가능하도록 뒷받침했다.
현대상선은 이 5척의 선박을 현대 챌린저(Hyundai Challenger)호, 현대 익스플로러(Hyundai Explorer)호, 현대 프런티어(Hyundai Frontier)호, 현대 이노베이터(Hyundai Innovator)호, 현대 파이어니어(Hyundai Pioneer)호로 각각 명명하고, 기존의 퍼시픽 프로그레스호와 함께 총 6척을 극동~미주서안 항로에 투입해 운항을 시작했다. 항로는 홍콩~지룽~부산~고베~요코하마~롱비치~오클랜드~시애틀~요코하마~고베~부산~홍콩이었다.
5척의 신조 대형선 투입을 계기로 현대상선은 컨테이너 관리를 전산화했다. 3만 개 이상의 컨테이너를 전산 관리하여 늘어나는 내륙 데포(Depot) 수에 대처할 수 있게 했다. 1988년 3월에는 적하목록자동제출시스템을 도입해 통관 업무를 간소화함으로써 화주의 신뢰도를 높였다.
이에 힘입어 주간 정요일 서비스도 시작했다. 정요일 서비스는 화물 도착의 정시성을 확보하는 기반이자, 내륙복합운송 등 다양한 비즈니스를 전개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는 중요한 서비스이다. 실제로 현대상선은 정요일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 반 만인 1988년 3월부터 DST(Double Stack Train), 2단적재열차를 통한 내륙운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2800TEU 시대 진입을 계기로 북미 지역의 영업망 조직 개편에 착수하여, 샌프란시스코·LA·뉴욕·시카고 등 4개 지점의 대리점 계약을 해지하고 직영 체제로 바꾸었다. 이는 북미 서안의 화물만으로는 만선이 어려울 수도 있어 북미 내륙 또는 동안까지 영업을 확장하는 등 내륙영업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현대상선은 1985년 9월 고려해운에서 인수한 풀컨테이너선 4척을 극동~미주서안 항로에 투입했다. 그리고 기존에 운항하던 현대 콘6호 등 세미컨테이너선 5척을 호주~미주서안 항로에 투입했다. 그러나 이들 선박은 호주~미주서안 항로의 화물을 운송하기에 적절치 않아 새로운 항로를 개발해야 했다.
현대상선은 광범위하게 시장조사를 벌였다. 이를 통해 남태평양의 타히티·뉴칼레도니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항로를 이 5척의 세미컨테이너선에 최적의 항로로 판단했다. 이 항로에서는 프랑스에서 생필품을 비롯한 다양한 물자가 타히티·뉴칼레도니아로 운송되고 있었는데, 컨테이너선의 운임도 높은 편이었다.
현대상선은 유럽에서 남태평양으로 가는 신규 항로를 개설하기로 했다. 남태평양에서 돌아올 때는 호주까지 항로를 연장해서 호주에서 컨테이너 화물을, 파푸아뉴기니에서 커피·코코아 등을 싣고 유럽으로 돌아오는 항로를 개발했다.
1986년 8월 현대 콘23호가 호주 멜버른을 출항하여 호주~수에즈운하~유럽~파나마 운하~남태평양~호주를 잇는 항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항로는 사실상 세계일주 서비스로, 현대상선이 창립 10여 년 만에 유럽에 진출했다는 의미가 있었다. 또 비유럽계 선사로는 최초로 유럽~남태평양~호주를 잇는 삼국간 항로를 개설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항로를 개설하면서 현대상선은 파리에 유럽지역 최초의 지점을 개설하기도 했다. <자료= HMM5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