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부문 영업적자 9000억 돌파...4년째 '밑 빠진 독' 유통·관광레저 선전했지만...화학 적자 상쇄는 역부족 대산·여수 사업재편 착수…실질 재무부담 완화는 '제한적' 롯데지주 신종자본증권 6250억...'숨은 부채' 리스크 부상
잠실 롯데타워 전경. /사진=롯데지주
[빅데이터뉴스 조재훈 기자] 롯데그룹이 2022년 이후 4년 연속 화학 부문 적자를 이어가며 지난해 그룹 순손실만 2조5080억원을 기록했다. 핵심 계열사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은 3년 새 두 단계 강등됐고 그룹 지주사인 롯데지주의 순차입금은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불어난 3조5000억원에 달한다. 화학 사업 구조조정에 30억달러짜리 바이오 공장 투자까지 겹친 롯데그룹이 '재무 체력'의 한계를 시험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재계 등에 따르면 롯데그룹(금융 계열사 제외)의 2025년 매출은 70조4270억원으로 전년(73조980억원)보다 3.6% 줄었다. 2022년 75조8970억원으로 정점을 찍고 지난해 최저치다. 영업이익은 7680억원으로 전년(5530억원) 대비 38.9% 늘었지만 영업이익률은 1.1%에 그쳤다.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 차감 전 이익)는 5조4720억원으로 전년(5조4420억원)과 비슷했고 빚을 갚는 능력을 나타내는 총차입금/EBITDA 배수는 9.3배로 여전히 높다.
부진의 '진원지'는 화학 부문이 꼽힌다. 화학 부문의 2025년 영업손실은 약 9500억원으로 전년(-8210억원)보다 15.7% 커졌다. EBITDA도 2024년 5750억원에서 지난해 3854억원으로 33% 줄었다. EBITDA가 이자비용에도 못 미치는 0.9배 수준으로 화학 부문이 번 돈으로는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다.
중국 화학 공장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이 주된 원인으로 배터리 소재용 동박(얇은 구리막) 수요 감소까지 겹쳐 적자가 더 커진 상황이다. 롯데케미칼의 순차입금은 6조7000억원으로 거래대금 후불 금융 계약(약 8300억원)과 주식 담보 조달(PRS, 누적 약 1조3000억원)을 합하면 실제 빚 부담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화학 부문과 달리 유통과 관광레저는 선전했다. 유통 부문(롯데쇼핑 등) 영업이익은 8450억원으로 전년(6370억원)보다 32.6% 늘었고 영업이익률도 2.6%에서 3.5%로 올랐다. 국내 소비 침체에도 해외 백화점·할인점 실적이 개선됐고 국내 백화점 집객 강화 효과도 반영됐다.
관광레저 부문 영업이익은 2024년 380억원에서 지난해 3440억원으로 약 9배 급증했다. 이는 면세점 부진 매장 정리와 중국 보따리상 의존도 축소 효과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그룹 전체 EBITDA에서 유통 비중은 47%에서 49%로, 관광레저는 11%에서 14%로 올라간 반면 화학은 7%대로 쪼그라들었다. 두 부문의 선전이 화학 적자를 상쇄하기에는 부족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롯데케미칼은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공장 통합에 나섰다. 대산 1호 사업은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을 별도 회사로 분리해 HD현대케미칼과 합치고 에틸렌 생산 설비(110만톤)의 가동을 멈출 예정이다. 양사는 통합 법인에 각 6000억원씩 출자하고 채권단은 두 회사 합산 채무 약 7조9000억원 상환을 3년간 미뤄 주기로 했다.
여수 1호 사업은 롯데케미칼·여천NCC·한화솔루션·DL케미칼 4개사가 산업통상부에 신청한 3사 합작법인 프로젝트다. 롯데케미칼 여수공장을 분리해 여천NCC와 합치고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폴리에틸렌(PE) 사업을 여천NCC에 자산으로 넣는 구조다. 여수 사업에서는 이미 멈춘 3공장(47만톤)과 합쳐 에틸렌 약 140만톤의 추가 감축이 예상된다.
롯데그룹은 화학 사업을 줄이는 대신 2차전지, 바이오 사업을 새 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있다. 바이오 사업을 맡은 롯데바이오로직스는 2022년 미국 제약사 BMS(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의 공장을 인수한 뒤 인천 송도에 의약품 위탁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총 투자 예상액은 약 30억달러이며 2026년 4월 현재 1공장 공정률은 99%로 2027년 가동이 목표다.
롯데지주는 이 회사에 2025년 말까지 6369억원을 출자했고 5500억원짜리 장기 대출에 대한 자금 보충도 약속했다. 2차전지 소재 계열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전 일진머티리얼즈)는 배터리용 동박을 주력으로 만드는 회사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중국발 가격 경쟁으로 2024년 3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섰고, 국내·말레이시아 공장 가동률은 2025년 47.4%로 2022년(97.5%)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신사업 투자가 계속되면서 롯데지주의 재무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 롯데지주의 별도 기준 순차입금은 2020년 말 1조8000억원에서 2025년 말 3조5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 빚 비중은 약 47%에 달한다. 자회사 투자 규모가 자기 자본 대비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이중레버리지 비율은 168%로 2024년(179%)보다 낮아졌으나 2020년(136%)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다.
여기에 신종자본증권도 새 부담으로 떠올랐다. 신종자본증권은 장부상 자본으로 분류되지만 이자를 적시에 내야 하고 발행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금리가 자동으로 오르는 조항이 붙어 있어 사실상 빚의 성격을 띠고 있다. 2025년 말 잔액은 6250억원이며 대부분 2년 안에 금리 인상 시점이 돌아온다. 롯데지주는 지난해 5월 롯데물산에 자기주식 5%(약 1445억원)를 팔아 급한 불을 끈 상태다. 부동산 자산(장부가 약 2300억원)도 추가 매각 카드로 남아 있다.
지주사의 여력이 줄자 지주체제 밖의 호텔롯데·롯데물산이 그룹 차원의 자금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롯데월드타워와 호텔 등 담보 가치가 높은 자산을 바탕으로 계열사 자금 조달을 뒷받침하는 구조다. 두 회사는 롯데건설 유동화 펀드에 7000억원 후순위 투자와 1조5000억원 규모 이자 보충을 약속했으며 롯데케미칼 회사채 담보(1조6447억원)와 롯데바이오로직스 출자(2430억원)에도 나섰다. 합산 부동산 자산은 19조8000억원으로 현재 빚 수준은 감당 가능한 범위이나 앞으로 갚아야 할 수도 있는 빚까지 더하면 실제 부담은 과거보다 커질 전망이다.
롯데렌탈 매각 실패도 변수다. 호텔롯데·부산롯데호텔은 2025년 3월 사모펀드 어피니티 에쿼티파트너스에 롯데렌탈 지분 56.2%를 1조5729억원에 팔기로 계약했으나 공정거래위원회가 2026년 1월 경쟁 제한을 이유로 막았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롯데케미칼 장기 신용등급은 AA+(2022년)에서 AA-(2025년)로, 롯데지주는 AA(2022년)에서 A+(2025년)로 각각 두 단계 내려갔다. 한국신용평가는 단기간에 빚 부담을 크게 줄이기는 어렵지만 주요 사업에서의 시장 지위와 보유 자산 규모가 신용도를 받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영훈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롯데케미칼의 사업재편 효과에 대해 "주식 담보 조달, 합작법인 빚에 대한 자금 보충 약속, 6000억원 추가 출자 부담을 감안하면 실제 빚 부담 완화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또 "바이오·2차전지 신사업은 지금은 성장성 기대보다 투자 부담과 실적 불확실성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며 "롯데렌탈 매각 지연은 호텔롯데를 넘어 그룹 전체 자금 운용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그룹 전반의 재무 전망에 대해 "단기간에 빚 부담을 크게 줄이기는 어려워 보이나, 주요 사업에서의 시장 지위와 보유 자산 규모가 신용도를 받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