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뉴스 유명환 기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최근 5년간 삼성전자 지분 매각 압박,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 단기납 종신보험 출혈경쟁, 유배당 계약자 회계처리 변경, 즉시연금 소송 등 5대 변수에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인 만큼 외부 정책 변수가 직접적으로 실적과 자본 변동성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양사 경영진이 어떤 해법을 내놓느냐가 향후 5년 경쟁력을 결정짓는 시험대로 부각되는 모양새다.
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2021년 이후 매년 새로운 외부 변수와 마주해 왔다. 삼성전자 지분 매각 압박, IFRS17 본격 시행, 단기납 종신 환급률 규제, 유배당 계약자 회계처리 변경, 즉시연금 소송 등이 시기별로 겹쳐 나타나면서 삼성생명·삼성화재는 그룹 내 단순한 보험 계열사를 넘어 자본·회계·규제 리스크가 집중되는 '복합 리스크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가장 큰 변수는 단연 삼성전자 지분 처분 압박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보통주 8.51%(약 30조원)와 삼성화재 1.49%를 합쳐 양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치는 시가 기준 33조원에 이른다. 취득원가는 약 5444억원에 불과해 평가차익만 30조원이 넘는 핵심 우량 자산이지만 동시에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보험업법(삼성생명법) △상법 개정안 등 세 가지 규제가 동시에 매각 압박을 가하는 구조다.
자사주 소각 흐름이 첫 번째 도화선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10조원 자사주 매입과 올해 상반기 보통주 7336만주 소각 계획에 따라 삼성생명·삼성화재의 지분율은 각각 8.62%와 1.51%로 자동 상승하게 됐다. 양사 합산 지분율이 금산법 한도인 10%에 근접하면서 삼성생명은 지난 3월 19일 이사회에서 삼성전자 지분 약 624만주를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종가 기준 약 1조4696억원 규모로 삼성화재도 비례 매각을 단행했다.
지분 매각은 반복적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삼성생명은 2018년과 2024년에 이어 올해까지 세 차례에 걸쳐 자사주 소각에 따른 지분 매각을 단행했고 삼성전자가 자사주 추가 소각에 나설 때마다 양사는 반복적으로 지분 매각 부담을 안아야 하는 구조다.
두 번째 변수는 국회에 계류 중인 '삼성생명법'이다. 현행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다른 회사의 주식을 보유할 때 총자산 3% 이내로 제한하지만 평가 기준은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5444억원)를 적용하고 있어 삼성전자 지분 33조원이 사실상 한도 규제를 우회하는 구조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매각 규모가 단숨에 18조원에 이른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 뿐 아니라 삼성화재 역시 삼성전자 지분 1.5% 가운데 약 2조6000억원에 달하는 0.8%의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며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삼성전자 지분의 특수관계인 9%에 대한 지배력 상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 번째 변수는 2023년 도입된 새 회계기준 IFRS17이다. 보험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 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 실적의 핵심 지표는 △계약서비스마진(CSM) △지급여력비율(K-ICS) △위험조정(RA) 등으로 재편됐고 양사 모두 보장성 보험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재편해야 했다.
특히 단기납 종신보험은 IFRS17의 '양날의 검'이 됐다. IFRS17에서는 보장성 보험이 연금·저축성 보험보다 CSM 확보에 유리해 5년·7년납의 단기납 종신보험이 새로운 효자 상품으로 부상했고 삼성생명의 종신보험 연납화보험료(APE)는 2023년 말 기준 1조4500억원으로 전년(7470억원) 대비 94.1% 급증했다.
다만 단기납 종신은 출혈경쟁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한때 10년 환급률 135%까지 치솟았던 단기납 종신은 △금감원 현장점검 △경험생명표 개정 △비과세 논란 △IFRS17 가이드라인 발표로 환급률이 120%대 초반까지 강제 조정됐고 올해 들어서는 119%대까지 추가 인하됐다.
신계약 단기납 종신의 해지율 리스크도 부각되고 있다. 신규로 판매되는 단기납 종신보험은 납입 초기에 해지율이 예상보다 높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보험사는 미래 현금흐름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위험조정(RA)을 확대 반영해야 해 CSM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네 번째 변수는 유배당 계약자 회계처리 변경이다. 삼성생명은 그동안 유배당 보험 계약자 몫을 '계약자 지분조정'이라는 항목으로 일탈회계를 적용해 분류해 왔지만 지난해 금융감독원의 지적에 따라 올해부터 보험부채로 측정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이 변경으로 삼성생명 자본은 26.7조원 늘었다. 회계처리 변경으로 유배당 계약자 몫이 자본으로 재분류되면서 삼성생명의 지난해 말 연결 기준 자기자본은 약 64조8000억원으로 2024년 말 대비 26조7000억원 늘었다. 다만 향후 삼성전자 매각이익 발생 시 일부가 유배당 계약자에게 배당돼야 하는 의무는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매각 차익 활용 폭은 제한된다.
다섯 번째 변수는 즉시연금 소송이다. 가입자 5만명과 보험금 4000억원이 걸린 즉시연금 소송에서 삼성생명은 2022년 11월 2심에서 1심을 뒤집고 승소했지만 미래에셋생명은 2심에서도 패소하면서 즉시연금 미지급 분쟁 규모는 최대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판결이 향후 5년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즉시연금 미지급금 분쟁은 보험사와 가입자 간 대규모 소송전으로 비화돼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주요 생보사가 모두 휘말려 있는 상태로 대법원 최종 판단에 따라 보험사 실적과 평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삼성화재도 IFRS17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삼성화재는 IFRS17 도입 이후 수익성이 낮은 방카슈랑스 영업을 중단했고 △저축성 상품 비중 축소 △건강보험·자동차보험 등 보장성 보험 중심 포트폴리오 재편 △GA 채널 강화 등을 통해 CSM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 변수도 양사를 동시에 흔들고 있다. '이재용 회장 → 삼성물산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에 삼성생명이 위치한 만큼 삼성생명법 통과 시 삼성물산이 추가로 매입해야 할 삼성전자 지분 가치는 최대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증권가에서는 양사가 연말 또는 내년 상반기 중 추가 매각에 나설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증권가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약 28조~30조원 규모로 자사주 소각이 반복될 때마다 추가 매각이 불가피한 구조"라며 "다만 매각 자금이 일부는 유배당 계약자 배당으로, 일부는 일반 주주 환원으로 배분되면서 자본 확충과 주주환원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과제가 동시에 부각된다"고 말했다.
대체 투자처 확보도 양사의 새 과제다. 삼성생명의 지난해 말 운용자산 중 주식자산(72조원) 가운데 관계사 주식만 69조3000억원에 달해 한국기업평가는 "삼성전자 주가 등락에 따른 자본변동성이 내재돼 있다"고 진단했고 보험업계에서는 삼성전자를 대체할 안정적이면서 수익성까지 높은 투자처 발굴이 향후 5년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5년 사이 지배구조 변수, 회계기준 변경, 규제 강화, 상품 출혈경쟁, 대규모 소송 등 보험사가 직면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리스크를 동시에 겪고 있는 셈"이라며 "이 다섯 가지 변수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향후 5년 양사의 경쟁력과 그룹 지배구조 안정성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