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선사들 급성장, 반면 한국 선사들 쇠퇴 지속 해운산업 재건 위해 정부가 나서서 관련 정책 가동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일환으로 선박은행 설립 2018년 해운재건 5개년 계획 확정, 해양진흥공서 출범
2015년 9월 13일 현대상선 로테르담 터미널(RWG) 전경. 사진= HMM 50년사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해운강국이자 조선강국을 자부해 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그 위상이 크게 낮아졌다.
금융위기 이후 2017년까지 국내에서는 최소 100여 개의 외항선사가 폐업했다. 대형 선사인 한진해운이 파산했고, 현대상선은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다. 팬오션은 법정관리 끝에 하림그룹에, 대한해운과 삼선로직스도 같은 절차를 거쳐 SM그룹에 인수되었다. 2008년 52조 원에 달했던 매출은 같은 기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반해 해외 국가들은 중국이 2009년 이후 2017년까지 252억 달러를 해운업에 지원하는 등 저마다 대규모 지원에 나서며 자국의 해운산업 육성 정책을 폈다. 한국 선사들이 빚을 갚느라 골몰할 때 다른 나라의 원양선사들은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몸집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1997년만 해도 주요 원양선사들의 규모는 머스크 23만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COSCO 20만TEU, 한진해운 17만TEU, MSC 15만TEU, 현대상선 11만TEU, CMA-CGM 9만TEU 등이었지만, 20년이 지난 2017년에는 머스크 390만TEU, MSC 306만TEU, CMA-CGM 229만TEU, COSCO 242만TEU 등 많게는 24배에서 적게는 11배 이상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 기간에 한국은 한진해운이 파산했고, 현대상선은 3.2배 상승한 36만TEU에 머물렀다.
이처럼 국내 선사들과 해외 선사들 간 규모의 차이가 현격해 진 구도에서 한진해운 파산의 충격이 더해지며 자칫 한국 해운업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정부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2016년 정부는 해운재건을 기치로 내걸고 해운산업의 부활을 위한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한진해운의 파산이 임박한 2016년 7월, 정부는 채권단과 함께 해운산업의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해운재건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해운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재정의하고, 공적 구조조정 체계에서 관리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전환한 것이다. 이후 해운업 지원을 위한 논의가 진척돼 2016년 10월에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에서 정부는 해운산업 정책의 비전을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통해 세계 해운강국 재도약'으로 정했다. 그리고 '세계 5대 초대형 글로벌 원양선사 육성 및 중견선사 세계 15위권 도약'을 목표로 정하고, 그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선박 신조 지원 및 캠코선박펀드 확대, 해운조선 상생 생태계 조성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 경쟁력 있는 선박 확보 지원을 위해 선박 신조 지원 프로그램 규모를 기존 12억 달러에서 24억 달러로 두 배 증액하기로 했다. 지원 대상도 초대형 고효율 컨테이너선 신조를 비롯해 벌크선과 탱커선으로 확대하며, 터미널 등 경쟁력 확보에 필요한 자산 구매도 지원 대상에 포함했다.
해운업계의 숙원이던 선박은행(Tonnage Bank) 설립도 추진하기로 했다. 정책금융기관 등이 주도하는 가칭 '한국선박회사'를 설립해 선사들의 원가경쟁력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을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선박회사는 선사 소유 선박을 시장가로 인수해 선사에게 재용선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회사를 말한다.
기존에 선박은행 역할을 해왔던 캠코선박펀드의 중고 선박 지원도 2019년까지 총 1조9000억 원으로 확대해 해운업계에 공급하기로 했다. 더불어 '해운·조선 협력네트워크'를 신설하는 등 해운·조선 상생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해운기업의 화물 유치를 확대하기 위해 한국무역협회와 한국선주협회 주관으로 '선·화주 경쟁력강화협의체'를 구성해 화주와 선사 간 협력도 유도해 나가기로 했다.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목표 지표 자료= HMM 50년사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은 정부가 해운업의 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구조적 문제 해결의 전면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정책이었다.
방안을 발표한 이후 정부는 2018년 4월 제15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해운재건 방안을 제도화한 '해운재건 5개년 계획(2018~2022)'을 확정했다.
계획에서 정부는 해운산업을 둘러싼 조선, 항만, 수출입, 금융 등 여러 산업의 생태계를 고려하여 해운정책의 미래 비전을 '해운재건을 통한 공생적 산업생태계 구축'으로 정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2022년 3월까지 해운산업 매출 51조 원을 달성한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정책 추진 방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안정적 화물 확보를 위해 국적선사의 국내 수출입 화물 점유율과 적취율을 높이도록 화주·선사 간 장기운송계약을 유도하고, '선화주 상생협력펀드'를 조성하여 운임 변동에 따른 위험을 분담하도록 했다.
또 저비용·고효율 선박 확충을 위해 선박의 대형화·고효율화·친환경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실행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정책금융기관의 해운금융 기능을 통합한 '한국해양진흥공사(KOBC)'를 설립(2018년 7월)해 선박투자, 보증, 중고선박 매입·재용선 등 다양한 금융수단을 지원하도록 했다.
나아가 지속적 혁신과 경영 안정성 강화를 위해서는 선사들의 비용 절감과 디지털 물류 체계 도입을 장려하고, 정보화·자동화·스마트선박 기술 개발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도록 했다. 중소선사에 대해서도 운항정보 공유, 공동운항, 공동구매 등 협업체계를 유도하여 산업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했다.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은 단순히 한진해운 사태의 후속 조치가 아니라 한국 해운산업의 체질을 '시장 자율형'에서 '정책 기반형'으로 전환한 분수령이었다. 이 계획이 바탕이 되어 해운금융의 공적 인프라가 정착되면서 금융기관 중심의 단기 유동성 지원 방식에서 산업특화형 장기금융 체계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또 국적선사 중심의 항로 복원과 규모의 경제 회복이 본격화되고, 해운·조선·물류산업 간 연계 강화를 통한 산업 시너지 창출이 궤도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은 한국 해운이 한진해운 파산 이후의 위기에서 자립적 성장 기반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 정책을 통해 정부는 해운을 국가경제의 물류안보산업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현대상선은 그 실행의 중심 주체로서 '국적 해운재건의 상징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