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1956년 처음으로 레이다를 보유했지만 원천기술 미국 의존 취약한 한국군 감시능력 보완할 새로운 방어용 무기체계 구축 시급 1976년, 미국이 레이다 및 군사 부수지원 장비를 한국에 판매 허용 1978년 M-163 자주포와 M-167 견인포와 연계한 군용 레이다 공급
박정희 대통령이 1978년 금성정밀공업을 방문해 회사가 개발한 대한민국 최초의 군용 발칸레이더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LIG D&A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금성정밀공업이 창정비와 함께 주도적으로 건개한 사업은 바로 군용 레이다 생산이었다. 1978년부터 생산한 군용 레이다는 정부가 추진한 자주국방 정책의 핵심사업으로, 금성정밀공업 설립의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남북 간 군사력은 특히 항공 병력 면에서 뚜렷한 격차를 보이고 있었다. 전투용 항공기 숫자를 비교해보면 북한군은 600여 대 규모로 한국군보다 2배나 많았다. 북한 전투기의 주력은 비교적 구형에 속하는 미그기(MIG)였고, 레이다를 피해 저공 비행하는 비료살포기 AN-2기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AN-2기는 특수부대 병력이 후방에 침투하는데 사용됐다. 또한 해안지대에 간첩을 침투시킬 목적으로 일본에서 쾌속정을 수입해 놓고 있었다. 취약한 우리 군의 감시경계 능력을 감안할 때 새로운 방어용 무기체계 구축은 시급한 과제였다.
당시 한국군의 레이다 수준은 매우 미흡한 상태였다. 한국군은 1956년 처음으로 레이다를 보유했다. 미군으로부터 인수해 경기함(DE-71)에 장착한 대함 레이다 2기가 바로 그것이다.
비록 레이다를 보유했지만 그것을 생산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됐다. 최초 레이다 보유 후 20년이 지난 1976년 5월, 미국은 레이다 및 군사 부수지원 장비를 한국에 판매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해 12월, 국내에 처음 레이다 기술이 도입됐고 이 사업은 3단계에 걸쳐 진행됐다. 아울러 같은 해 6월부터 시작된 율곡 사업(전력증강계획)에 따라 북한 AN-2기 침입에 대비한 발칸포 200문 생산계획이 추진됐다. 이듬해인 1977년 1월, 금성정밀공업은 국방부와 발간레이다 조립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발칸레이다는 20mm M-163(자주)포와 M-167(견인)포의 항공기 방어용 사격통제장치이다. 전용 공장 건설이 완료되지 않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신뢰 속에서 레이다 조립 생산 업무를 맡게 됐다. 대한민국 레이다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발칸레이다에 대한 기술적 경험은 부족했지만, 기술요원들은 열정과 사명감으로 제품 생산에 최선을 다했다. 유도 정비 및 개량 과정에서 습득한 기술을 기반으로 발칸레이다 개랑사업도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은 정부에 금성정밀공업이 기술 면에서 탁월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시금석으로 작용했다. 또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레이다 전문회사로 자리매김하는 원동력이 됐다.
<자료: 나라지키기 40년 LIG넥스원>
<용어설명>
O 미그기(MIG)
소련의 군용 전투기 기종. 1953년 초음속의 MIG-19가 제작됐고 1960년대 후반 MIG-23, MIG-25가 출현했다.
O AN-2기
1940년대 말 만든 복엽기로 원래는 농업용 항공기였다. 가장 오랜 기간 생산된 항공기로 그 숫자가 현저히 줄긴 했지만 아직 북한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