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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 D&A 50년-8] No.1 방위산업체 향한 비전 수립

2026-07-10 10:12:49

1980년대 후반 방산정책 육성 기조가 퇴색하며 산업 침체기 돌입
금성정말도 그룹 차원 사업구조 재편성으로 회사 규모 대폭 축소
1991년 12월, '한국 제1의 방위산업체' 비전 수립, 행동규범 제정
1987년 노조 출범, 건전하고 생산적인 노사관계 모범사례 평가 받아

금성정밀공업이 1982년 출시한 선박용 항해 레이더 ‘GS-753.’ 사진= LG이노텍
금성정밀공업이 1982년 출시한 선박용 항해 레이더 ‘GS-753.’ 사진= LG이노텍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1980년대에 들어서 정부는 자주국방 정책에 힘입어 방위산업이 자립기반 단계에 접어 들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방위산업에 대한 정책 방향을 대폭 바꾸기 시작했다. 정부 주도의 지원책보다 경제성에 입각한 업체의 자생적인 기술 생산 역량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 덕분에 해외 구매가 불가피한 최첨단 정밀병기와 고도 기술 장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재래식 기본 병기류 및 장비 등을 자급할 수 있었다. 1986년, 군 전체 장비 및 물자 구입액의 64%가 국내 생산품으로 채워졌다. 외관상으로는 우리 방위산업계가 활황을 맞는 듯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방산물자에 대한 국내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청와대에서 국방부 상공부 등으로 정책 추진의 중심축이 옮겨진 탓이었다. 실제로 정부의 방위산업에 대한 관심 척도라 할 수 있는 ‘방위산업진흥확대회의’가 없어지는 등 방위산업이 정부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지고 있었다.

방위산업에 대한 정부의 육성의지 퇴색과 더불어 산업정책과의 연계성 부족, 정책 합리성 및 일관성 결여, 조달 규모 한계와 시장 경직성 등의 여러 요인으로 방위산업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국내 방위산업체 평균 가동률은 일반 제조업체에 크게 밑도는 80%선에 머물렀다. 게다가 기술적인 면에서 아직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 방위산업체들은 가격이 저렴한 기본 병기 생산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금성정밀 역시 여타 방위산업체가 처한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룹 차원의 사업구조 재편성으로 회사 규모도 대폭 축소됐다.

관계사끼리의 중복 투자를 막고 분아별 교통정리를 한다는 취지에서 추진된 F-8프로제트에 따라 광학기기 사업과 정밀모터 사업이 1988년 1월부터 다른 게열사로 이관됐기 때문이다. 이때 생산설비는 물론 관련 인력까지 자리를 옮겼다.
그간 사업 개척을 위해 땀 흘린 임직원 입장에서는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금성정밀은 방위산업 중심의 전문화·고도화된 기업으로 거듭나게 됐다.

1988년 1월 민수사업 개척에 열정을 쏟았던 김영호 사장이 사임하고 제5대 최선래 사장이 경영을 말았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새 출발 88’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도약 가반을 닦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듬해 제6대 안치한 사장이 취임했다. 그는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회사를 구하려고 전사적인 공감대 형성에 힘쓰며 재2창업을 부르짖었다. 우선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분위기 쇄신을 시도했다. 회사를 기능별 조직으로 개편하면서 소수 정예화를 통해 체질 혁신을 꾀한다는 전략이었다. 1989년 한 해 동안 24개 부서가 신설, 36개 부서가 통폐합됐다.
이듬해 연초에는 혁신 과제로 선정한 ‘기술혁신·신상품 개발, 매출 확대, 생산성 혁신, 품질 개혁, 업무혁신’ 여섯 가지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업무혁신본부를 발족했다. 업무혁신본부 주도로 경영 합리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매출 증대 노력이 이어졌다. 임직원 모두의 땀과 열정으로 1991년 매출 실적은 흑자로 전환됐다.

1990년 2월 그룹은 새 경영이념을 선포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금성정밀도 이듬해 7월부터 사업 특성에 맞는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고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1991년 3월 방산CU로 정식 승격한 후 비전 수립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그해 8월에 사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전 수립 총괄기구인 비전추진위원회가 구성 됐고, 각 고의 노력으로 비전 설정이 완료됐다.

1991년 12월, 그룹 회장과 컨센서스 미팅을 통해 21세기 비전이 확정됐다. 금성정밀의 장래상은 ‘한국 제1의 방위산업체’, ‘특정 분야에서 세계 유수업체 도약’. ‘계측기 전문업체 지향’ 등으로 그려졌다. 이외에도 향후 추진할 경영과제와 그룹 공통의 행동규범에 입각한 ‘금성정밀 행동규범’이 정해졌다.

“방산CU의 구성원들이 현 조직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가. 개선이 필요한 조직 영역에 대해 그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우선 인화원과 공동으로 ‘방산CU’ 조직문화 진단을 실시했다. 진단 결과, 방산CU의 조직문화 특성은 ‘정체되고 이질화된 문화’로 집약됐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조직문화를 혁신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조직인사 개혁을 시작으로 각종 제도를 정비했다.

한편, 1987년 금성정말 노동조합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노조는 임직원의 의견을 반영해 회사와 상호 협력하며, 각종 복리후생 제도 개선에 힘을 보탰다. 금성정밀 노조활동은 건전하고 생산적인 노사관계의 모범사례로 평가받았다.

<자료: 나라지키기 40년 LIG넥스원>

<용어 설명>
O CU(Culture Unit) : 사업문화 단위로 1990년부터 LG그룹은 각 문화단위 별로 자율경영을 추진했다.

O 인화원
1988년 12월 개원한 LG그룹 임직원을 위한 연수 공간. 경영이념인 ‘인화단결’을 실현할 요람이라는 뜻에서 인화원 이름이 정해졌다.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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