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명칭 통일에 따라 사내 의견조사 통해 사명 결정 1996년 새 비전 '도약 2005' 선포, 매출목표 2.5조 목표 시스템‧조직 정비로 방위사업과 민수 조화로운 성장 모색 IMF 외환위기, IT도입 '스피드‧기술경영'으로 경영성과 창출
LG정밀 사기(社旗) 사진= LIG D&A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1995년 1월 1일 그룹에서는 새롭게 ‘LG’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룹 전체의 비전을 명화하게 전달하고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강력하고 선명한 명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룹의 명칭이 정해지자 그간 럭키, 금성, 럭키금성, 희성 등의 명칭을 혼용하던 각 계열사는 ‘LG’를 중심으로 사명 개정을 추진했다. 금성정밀 역시 1994년 9월 사내에서 실시한 의견조사 결과에 따라 ‘LG정밀’로 사명을 변경했다.
사명 변경뿐 아니라 1994년 초 제대 손기락 사장이 취임하면서 경영혁신을 통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1991년 금성정밀이 금성전기 방위사업부문을 통합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전문경영인이었다. 그런만큼 기업 미래상을 설계하는 데 있어 그의 리더십에 거는 기대가 자못 컸다. 취임 일성과도 같은 1995년 1월 신년사에서 방위사업부문의 성장 전략을 엿볼 수 있다.
“먼저 방위산업은 자체 개발 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사업화로 연결시키고 장기 비전 실현을 위한 신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확대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방위산업은 현재는 물론 중장기적으로도 우리의 확실한 성장 기반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함은 주지의 사실입니다만, 냉전체제의 종식이라는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라 우리의 각오와 대응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객이 바라는 바를 제대로 파악하고 내부 역량을 극대화시켜 이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연결시킴은 물론 해외 선진 방위산업체와의 제휴를 보다 다변화해 사업 영역을 심화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방위사업은 민수사업과 달리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최고의 가치임을 되새기고 제품의 성능, 품질 그리고 서비스 등 어느 것 하나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당시 LG정밀은 크게 본사, 구미공장, 연구소 등 3개 사업장으로 구성돼 있었다. 본사에는 신사업부문, 경영지원부문, 방산사업부, 전자시업부 등이 속해 있었다. 팀제 도입에 따라 전사적으로 54개 팀과 3개실이 각자 역할을 갖고 운영됐다.
구미공장은 지원부문, 품질경영부문, 생산공장부문, 기술지원부문으로, 연구소는 3개 그룹, 4개 팀으로 구성됐다. 이 중에서 연구소는 레이더, 지상유도부기, 수중무기, 지휘통제통신, 전자전 등 전략사업별로 짜여졌다. 또한 방산사업부 사업팀은 국내는 물론 해외 수출 확대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매년 전 임원과 간부사원이 참석한 가운데 매출 증대를 위한 워크숍을 실시하고, 사업계획 수립과 함께 목표 달성을 위한 결의를 함께 다졌다.
LG정밀로 사명 변경후전 임직원은 매출액의 90%를 차지하는 방위사업부문을 중심으로 지속 성장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경주했다. 모두가 ‘제2의 혁신’에 헌신적으로 나선 결과 1995년 LG정밀은 창사 이래 가장 뛰어난 경영 성과를 거뒀다. 외형상 36%가 넘는 고성장을 실현하는 실적을 거두면서 국내 방위산업계 선두 위치를 확고히 다졌다.
1995년 2월 구본무 LG그룹 회장 취임과 더불어 그룹에서 ‘제2의 혁신’을 추진하지 LG정밀도 ‘21세기 초우량 LG기업’이 되기 위한 비전 작업을 진행했다.
마침내 1996년 5월 LG정밀은 새 비전인 ‘도약 2005’를 선포했다. 새로운 비전을 통해 LG정밀은 2005년 매출목표 2조5000억 원을 달성하고 경영의 질과 양에서 동시에 1등 실현을 이룬다'는 명확한 목표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이와 함께 ‘글로벌 리딩 컴퍼니(Global Leading Company)’라는 기업 미래상도 설정했으며, 방위산업 전문기업의 위상에 맞춰 안전(Safety)과 편의(Convenience)라는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해 고객 감동을 실현하자는 구체적인 실현방안까지 명시했다.
새 비전에 걸맞게 1996년 8월 1일부터 ‘방산CU’ 명칭이 ‘정밀CU’로 변경됐다. 이 CU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혁신 방향을 ‘아이디어가 풍부한 인재가 되기 위한 창의, 신사업을 발굴 성공 체험할 수 있는 도전,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 확보를 위한 조직문화 혁신’으로 설정했다.
먼저 지식경영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학습조직을 도입했다. 이것을 사업장별로 운영해 연말에는 최종 공유회를 가졌다. 또한 관심 분야에 대한 연구회 성격인 ‘2005팀’을 사업장별로 조직했다. 임원 11명을 비롯한 간부사원은 팀제 정착과 모든 경영활동의 중심인 경영진의 리더십을 향상시키기 위해 각종 관련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혁신활동을 촉진시킨 것은 사내 커뮤니케이션이었다. CU장과 임원은 현장 중시경영을 실천하고 사원 의견을 수럼, 이를 반영하고자 V-Meeting을 실시했다. 1997년에만 총 12회에 걸쳐 미팅을 실시해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과 사원 138명이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을 열었다.
조직문화 혁신과 함께 새 비전을 구체화하려는 임직원의 열정은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었다. 1996년 4월 구미공장에서는 전 사원이 참석한 가운데 ‘ATJ 2000 선포식’을 거행했다. ATJ 2000이란 2000년까지 ‘품질혁명을 통해 품질수준 3배, 생산혁신으로 생산성 3배, 연구개발 혁신으로 연구개발 효율 3배 상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해 21세기 초우량기업으로 발돋음한다는 제2의 혁신운동이었다. 즉 1993년부터 추진해 온 혁신활동에 힘을 더하고 선진기업 수준으로 품질을 향상시켜 비전을 달성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구미공장은 기본에 충실한 합리적 해결방안을 바탕으로 제2 도약을 위한 점프(JUMP) 팀 과제와 직제 과제를 설정해 지속적인 실천 활동을 전개했다.
LG정밀의 생산체계는 관리 패턴이 서로 다른 두 축으로 이뤄져 있었다. 방위사업부문의 ‘개별수주 생산체제’와 민수부문의 ‘주문예측 생산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 중 매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방위사업부문은 제품 생산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고 다기능 복합 시스템에 의해 제품이 만들어진다는 특성을 지났다. 게다가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 각 작업단위마다 공정 공법이 다양해 사업 및 생산일정 관리에 중점을 두고 생산관리가 이뤄지고 있었다.
LG정밀은 이러한 방위산업 생산 시스템의 특징을 바탕으로 생산관리 효율성을 높이고 민수부문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생산 라인 구축을 고민했다. 이에 따라 고객 요구를 즉시 만족시키고 제품 재고율을 줄이고자 구미공장에 신 생산시스템인 셀(Cell) 생산 라인 구축을 추진했다. 비전 달성을 위해서는 방위사업과 민수사업의 조화로운 성장이 필수라고 판단해 생산능력 확대를 꾀하려는 해결 방안이었다.
이에 따라 셀 생산 라인을 적용할 공장 건립을 추진했다. 임직원 모두에게 기존 공장보다 두 배 이상 규모가 큰 신공장 건설은 가슴 벅찬 일이었다. 총공사비 390여억 원을 투입해 기존 구미공장 부지에 건물면적 2만9,7OO㎡의 3층 규모 공장동을 1995년에 완공하고 시범운영 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공사비가 투입된 최신설비의 신설공장에서 통신장비, 수중장비 등 방위산업 제품 외에 차량용 전장품 및 정밀 계측기를 생산했다.
신공장 건설을 완료한 LG정밀은 민수부문 확대를 주요 사업전략 방향으로 설정했다. 당시 방위사업부문이 매출의 약 90%를 차지했지만, 수익성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영난 타개를 위해서는 획기적인 성장 전략이 필요했다. 이에 2000년에는 방위사업과 민수사업 비중을 5:5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방위사업이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자 민수사업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일종의 고육책이었다.
LG정밀은 미래 유망사업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던 중자동차용 항법장치(Car-Navigation System)를 사업 아이템으로 선정했다. 그간 군사용 및 민수 선박용 레이다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을 활용하면 기술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침내 1994년 4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차량용 내비게이션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GPS(지리정보시스템)를 이용해 오차가 30~100m 정도인 GNS-9000 시제품을 발표했다. 이 제품은 항법 기능이 타사 제품보다 탁월하며 GPS 위성을 수신할 수 없는 터널이나 고충건물 밀집지역에서도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하이브리드 내비게이션(Hybrid Navigation, 혼합항법) 기능을 갖춘 것이 특징이었다. 향후 2000년대 첨단교통 시스템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여러 자동차 및 항공 관련 업체들이 구매를 희망해 왔다. 그러나 갑자기 몰아닥친 IMF(국제통화기금) 한파로 쌍용자동차에 납품하기로 한 계약이 취소되면서 자동차용 항법장치사업은 좌초하고 말았다.
계측기사업도 디지털부문과 통신전자부문에 주력했다. 디지털 오실로스코프 개발이 당면 과제였는 데 이 분야의 진출을 위해 연구 개발에 적극적으로 자원을 투자하며 산학 공동개발, 제휴, 우수 인력 육성 등 여러 방안을 강구했다.
‘도약 2005’ 비전을 추진하며 혁신활동에 매진하던 1997년 말 우리나라에 IMF 한파가 몰아졌다. 나라가 부도 위기에 몰리고 하루에도 수백 개 기업이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LG정밀도 대폭적인 국방예산 감축 등의 영향으로 직접적인 위기 상황에 노출됐다. 전시(戰時) 경영에 돌입한 LG정밀은 먼저 조직을 슬림(Slim)화하기 위해 임직원 20%를 감원했다.
IMF 환란으로 인한 경영위기를 극복하고자 회사 차원의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했다. 투자계획을 재검토하고 사업구조를 혁신하는 한편 재무건전성 확보에 관심을 기울였다. 노동조합도 ‘노경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1998년도 임단협 무교섭을 결의했다.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 노력도 이어져 1998년 12월 종합전자 부품업체인 LG C&D를 흡수 합병하고, 어뢰용 정밀기기를 생산하던 해양장비사업을 분사했다.
제8대 송재인 사장 영입 후 LG정말은 IT에 기반한 스피드경영과 기술경영을 통해 획기적인 경영체질 개선을 추진하며 위기 극복에 나섰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보기술(TT)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이에 따라 경영 핵심이 원가절감과 효율성에서 스피드(속도경영)로 옮겨갔다. 21세기 초우량기업을 지향하는 LG정밀도 스피드경영을 추구하기 위한 혁신이 요구됐다. 어기서 스피드경영이란 ‘사업의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는 능력과 미래를 예측해 준비하는 데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1996년 4월 LG정밀은 ‘중장기 IT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이에 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영업 부문은 두 개 사업부라는 사업 특성에 맞게 각기 다른 두 가지 마스터플랜을 마련했다
민수와 달리 방위산업의 영업 시스템은 기존에 없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특히 모든 자료를 영업사원이 개인 컴퓨터에서 수작업으로 관리하는 바람에 담당자 부재나 퇴사 시 해당 사업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영업 시스템이 구축되자 수주상황과 계약정보 공유, 일일 영업실적 집계 등이 가능해졌다. 이후 이들 자료를 근거로 영업활동의 체질 개선이 이뤄졌다.
IT 추진으로 생산 인사 재무부문 등에서 정보공유가 활성화됐다. 특히 생산부문은 생산 자재 품질 제조설계관리를 통합해 부문간 정보 단절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또 생산계획 및 자재소요 계획에 대한 시물레이션을 강화해 효율적인 생산관리를 지향했다.
IT는 연구개발 효율을 높이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R&D 통합 전산화 시스템을 추진하던 연구소 IT팀이 그룹 내 최초로 TIS(Technology Informatiorn System)를 구축해 1998년 2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1998년 초 기술경영의 중요성이 강조됩에 따라 연구소장에게 CTO(Chief Technology Oficer) 역할을 겸하도록 했다. CTO 체제를 구축한 것은 제품 개발이 완료되기까지 연구개발 기간이 길다는 취약점을 보완하는 측면이 강했다. CTO는 R&D 분야 혁신을 주도하며 기술 전략을 수립하고 차별화된 핵심 기술 역량을 확보하는 업무를 맡았다. 또 CEO의 경영을 보좌하며 신사업 추진을 기술적으로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