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채권단의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두 번째 새두인 SB선보를 맞이하며 다시 출발하나는 ‘SB대선(구 대선조선)’ 다대포 조선소 전경. 사진= SB대선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대선조선은 해방둥이 기업이다.
HJ중공업과 이웃한 부산 영도에서 대한민국이 해방한 1945년 설립한 대선조선은 대기업들로만 구성됐던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정회원으로 가입한 유일한 중형 조선소였을 만큼 역사를 존중받았으며, 국내 조선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6·25전쟁을 비롯해 숱한 정치적 파동과 1~2차 오일쇼크 등 경제적 위기를 겪었지만 수출 드라이브로 대변하는 경제 성장 추세 흐름을 타며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했다.
하지만 재앙으로 불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피해 갈 순 없었다. 남해권 중견‧중형 조선소들이 도미노처럼 줄도산하며 시장에서 퇴출했고, 대선조선도 2010년 채권단 자율협약(워크아웃) 체제에 들어갔다.
중국 조선업체들의 공세가 덜했던 스테인리스 탱커, 참치선망선 등 중소형 선박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2018년과 2020년 영업이익이 흑자를 기록했다. 회사의 경쟁력을 되찾았음은 물론 선종 개발 등 미래를 위한 준비에도 나서며, 이젠 채권단 그늘에서 떠나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2020년 12월 동일철강을 주축으로 세운철강·동원주택·동원종합물산·동일스위트 등 부산 지역 기업 5곳이 참여한 컨소시엄에 약 1600억 원에 매각됐고, 2021년 4월 채권단 관리에서 벗어났다.
동일철강 컨소시엄이 회사를 인수한 2021년 하반기부터 세계 해운시장과 조선업이 본격적으로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서 대선조선도 화학제품 운반선 등에서 수주 실적을 올렸다. 흐름상 모든 일이 잘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대선조선은 2년여 만인 2023년 10월 워크아웃 체제에 재돌입했다.
“왜?”
대선조선과 인연을 맺고 있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의문을 던졌다.
언론 보도를 통해 불거진 표면적인 이유는 동일철강이 대선조선 인수에 거금을 썼고, 정상화를 위해 상당한 추가 자금을 투입하면서 자체 자금 사정이 악화했기 때문이었다. 대선조선에 ‘문제’가 생기자 모회사까지 재무적 부담을 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대선조선에 발생한 ‘문제’가 어떻게 생긴 것이냐에 대한 해석은 동일철강과 대선조선이 완전히 달랐다. 당시 회사의 사정과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자는 대선조선의 문제는 경영자의
동일철강 측은 원자재 가격 상승했고, 용접공 등 숙련 인력이 부족해 건조 일정이 지연되고, 선박 인도가 늦어지면서 대금 회수까지 차질을 빚는 일이 잦았다고 주장했다. ‘헤비테일(Heavy Tail)’ 계약 구조도 어려움을 가중했다는 외부 분석도 있었다. 헤비테일은 선박 건조 대금의 상당 부분을 선박 인도 시점에 받는 방식을 일컫는다.
헤비테일 계약 문제는 이미 조선업계에 고착화 되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심각한 것은 사실이며, 지금도 조선업계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하지만 수주 물량이 늘면 건조에 필요한 원자재 소요량이 많아지며, 물량이 늘어날수록 구매력이 커져 협상을 유리하게 전개할 수 있다. 또한 대선조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강점, 환율과 원자재 가격 추이, 원자재 구매 패턴을 예측해 최적의 조건으로 구매하는 시스템이 있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최선의 조건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반드시 문제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남는 건 인력 문제다. 기자는 대선조선을 오랜 기간 지켜봐 왔는데, 해방둥이 기업 가운데 대기업의 후광 없이 중형 조선소로서 위상을 지켜낼 수 있었던 비결은 결국 ‘맨파워’였다고 봤다. 워크아웃 중이었던 대선조선 영도 조선소를 찾아가 대표이사와 임직원들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서 느낀 인상은 대기업 종사자들 못지않은, 그보다 더한 회사에 대한 자존감이었다. 지원 인력과 현장 인력이 장벽 없이 소통하는 신뢰하는 문화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무기였다.
8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맨파워는 동일철강에 인수된 지 불과 1년도 안 되어 와해했다. 조직을 무너뜨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인사를 잘 못 내는 것이라고 했다. 동일철강은 인수 후 대표이사를 비롯해 임원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했다. 이들은 동일철강과 관련한 인사들로 철강재 자체만 만들어봤을 뿐, 철강재로 무엇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다.
조선업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을 경영진으로 올리면서 회사는 크게 흔들렸지만 실무를 책임지는 직원들이 있기에 운영은 할 수 있었다. 동일철강은 실무도 인사로 건드렸다. 조선소장을 비롯해 조업 현장을 관리할 간부급 인력도 선박 건조에 무지한 인사를 앉힌 것이다. 원자재 구매 조달부터 블록 생산, 완선 조립 등으로 흐름이 자연스레 이어져야 하는데 한 공정에서 조업이 지연되어 흐름이 끊기는 병목현상이 빈번했다. 불만을 호소하는 숙련공들의 의견은 무지한 관리 직원들에 의해 묵살되었고, 현장을 모르는 경영진은 현장의 생산능력 저하만 나무랐다.
절망한 대선조선 작업복을 자랑스러워 했던 핵심 인력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대선조선은 한진중공업과 함께 ‘대한민국 조선업 사관학교’로 불리는 데, 가뜩이나 인력 부족에 시달리던 대형 조선소들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연봉을 제시하며 대선조선 인력들을 모셔갔다.
무능한 관리자와 조업 경험이 짧은 비숙련공만 남은 영도 조선소 현장의 조업 지연은 당연했다. 공정이 늦어지면서 선주로부터 중간 건조 대금을 받기는커녕 이로 인한 지체 보상금을 물어줘야 할 상황에 몰렸다. 돈을 못 받으니, 원자재를 공급한 협력사들에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했다. 한때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던 대선조선의 시스템 경영은 새 주인을 맞이한 지 1년여 반에 완전히 무너지면서 경쟁력이 없는 그저 평범한 조선사로 전락했다.
기자는 조선산업을 취재하면서 투자금 회수를 위해 미래까지 내다 팔아버린 뒤 껍데기만 남은 기업을 정상화했다며 어깨를 들썩거리는 채권단의 문제를 꾸준히 지속해 왔다. 대선조선은 얼핏 보면 채권단의 문제라고 볼 순 없다. 그런데, 동일철강을 대선조선의 새주인으로 낙점한 장본인은 채권단이었다. 경영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눈도 갖지 못한 데에 대한 윤리적 책임은 피할 수 없다. 대선조선은 능력이 없는 리더가 기업을 차지했을 때, 그 기업이 어떻게 무너지는 거를 보여준 사례다.
수출입은행은 25일 대선조선이 두 번째 워크아웃을 졸업했다고 발표했다. 두 번째 새로운 주인 SB선보에 인수된 회사는 이름을 ‘SB대선’으로 바꿨다. 생존을 위한 기회를 다시 얻기 위해 회사의 진원지인 영도 조선소를 팔고, 다대포조선소로 본사를 이전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SB대선은 해야 할 일이 많다. 공정 시스템을 복원해야 하고, 임직원 간 소통의 문화도 되살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장을 잘 알고 조직을 이해하며, 구성원은 물론 SB대선의 가치망을 함께 하는 모든 이해관계자를 포용할 수 있는 경영진이 회사를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