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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철의 펀치펀치] 안팎으로 두들겨 맞는 추경호 장관

2023-01-06 09:24:19

문인철 위원
문인철 위원
지난 5일 민주당에서 추경호 장관을 때렸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현 경제팀이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이들을 교체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라고 촉구했다. 좀 뜬금없다. 시장 신뢰를 어떻게 잃었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약하다. 장관교체가 민주당의 단골 메뉴이긴 하지만 뭐 야당이니까 내세울 수 있다. 여하튼 밖에서 맞는 매다.

정부 내부에서도 상황이 꼬였다. 반도체 세제지원은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관련 법이 통과되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기준 6%였던 세액공제율을 여야 합의로 8%로 높였다. 8%는 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한 안이다. 그런데 법 통과 11일 만에 정부가 추가 감세를 결정했다.

지난 3일 정부는 ‘반도체 등 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제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반도체와 2차전지 같은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대기업과 중견기업 기준 현행 8%에서 15%로 올렸다.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높였다. 아직 국회의 벽이 남아있다.
대기업 15%, 중소기업 25% 세액공제율이 나온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기재부는 관계부처와 협의해 반도체 등 국가 전략산업에 대한 세제지원을 추가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8%를 제안하고 국회가 통과시켜 줬는데 기재부가 우습게 된 셈이다. 대통령이 기재부 장관에게 야단을 친 거다.

기재부가 대통령 경제수석실과 사전 협의가 이토록 없었는지 의아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제일 잘 나가는 부처는 두말없이 기재부다. 기재부가 자신감만 가지고 치고 나갔다면 더 문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야당 표현대로 시장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 때의 일화다. 새로 임명된 경제 부총리가 전임 부총리들을 저녁에 초대했다. 취임을 축하하는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당시에는 경기가 좋았던 시절이라 덕담을 나눌만한 여유가 있었다. “역대 정부에서 경제를 가장 잘 운영한 사람이 누굴까”라는 말이 잠시 화제가 되었다. 몇몇 이름이 거명되었다.

결론이 나지 않았는데 이 한마디가 좌중을 평정했다. “경제를 가장 잘 운영한 재상은 경기가 좋은 시절에 그 자리에 있었던 부총리다”. 경제정책만으로 경기를 호전시킬 수 없다. 국제경제 환경 등 여건이 좋아야만 정책효과가 높아진다. 인물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매우 한정적이다. 경제 규모가 작을 때는 인물과 정책 영향이 클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추경호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야단을 맞았다. 야당으로부터는 물러나라는 요구도 받았다. 이처럼 안팎으로 두들겨 맞고 있는 추 장관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올해 경제전망은 대부분 1%대 성장의 경기침체를 예상한다. 국제 경제환경도 매우 좋지 않다. 부총리 모임의 일화처럼 경기 탓만 해야 하나. 그럴 수 없다. 한가한 이야기일 뿐이다.

경제정책에는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이 대표적이다. 불황일 때의 금융정책은 금리를 낮춰서 경기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재정정책은 돈을 많이 푸는 확장적 재정정책이다. 그런데 둘 다 막혀있다. 금리를 낮출 수가 없다. 너무 많이 오르는 물가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에 맞추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한미 금리차가 벌어지면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이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빠져나간다. 그것은 또 다른 경제 위기를 불러온다. 불황인데도 금리를 낮출 수 없는 이유다. 확장적 재정정책도 막혀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가채무는 1000조 원을 돌파했다. 국가채무비율이 역대 최고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재정건전성 확보를 정책 기조로 삼고 있다.

국회에서 확정된 올해 정부예산을 보자. 총지출 규모는 638조 원, 총수입 규모는 625조 원이다. 적자편성이긴 하지만 약 13조 원에 불과하다. 거의 균형예산이다. 불황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지출을 많이 늘리는 적자편성이 아니라 균형예산이 되었다.

이는 경기침체 때 실행해야 할 정책과는 정반대다. 금융정책 부분은 우리나라만 따로 갈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할 수 있는 부분은 재정정책이다. 그런데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기조에 막혀있다. 필요하다면 과감히 적자 재정정책을 펴야 한다. 추가경정예산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야당의 벌떼 같은 공격이 예상된다. 하지만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공격도 감당해야 한다.

경제는 예측 불가한 불확실성이 크다.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상반기까지 지금의 예측대로 계속 나빠지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명분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는 이념이 아니다. 경제 상황에 맞는 정책을 써야 한다.

추경호 장관이 유능한 재상으로 평가받는 일은 두 가지 경우다. 세계 경제가 갑자기 호전되는 행운을 통해서다. 다른 하나는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재정건전성의 명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행운도 좋고 실력 발휘도 좋다. 경제를 살린다면 박수를 받는다.

<문인철/빅데이터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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