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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영의 正주행] 지프 어벤저 '감성 충만' 외모에 반전 매력 더해…필요한 건 '용기'

'가장 작은 지프'이자 브랜드 첫 전기차 개성 넘치는 외모에 오프로더 감성 갖춰 멀미 없이 자연스러운 주행 질감 인상적 저렴한 내장, 경쟁차 대비 높은 가격 아쉬워

2025-05-21 14:07:44

지프 어벤저 정면모습. =성상영 기자
지프 어벤저 정면모습. =성상영 기자
[빅데이터뉴스 성상영 기자] 지프가 지난해 야심차게 내놓은 첫 전기차 '어벤저'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어벤저는 2023년 유럽에서 지프 역사상 최초로 '올해의 차'에 선정되며 나름대로 경쟁력을 인정받았지만, 국내 전기차 시장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어벤저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냉담한 반응은 숫자로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신차 등록 대수 통계를 분석한 결과 어벤저는 지난 9월 출시된 이후 지난달까지 단 36대 팔리는 데 그쳤다. 8개월 동안 월 평균 판매량이 5대에 못 미치는 셈이다.

물론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말이 있다. 큼지막한 바퀴에 각진 외형으로 험로를 한껏 누비던 지프가 시내에서 얌전하게 타는 전기차를 내놨으니 어색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전동화 쓰나미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전이라는 의미에서 어벤저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야심찬 도전에 아직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어벤저를 타봤다.

시승 구간은 약 200㎞로 짧지만,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경험을 시도했다. 어벤저는 뻥 뚫린 도로에서 빠르게 치고 나가는 맛이 아쉽다가도 복잡한 도심에선 기동성과 기대 이상 배터리 성능이 만족스러웠다. 서울에서 출발해 경기 화성·안산 서해안을 끼고 달리며, 어벤저의 숨은 매력과 한계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지프 어벤저 실내. =성상영 기자
지프 어벤저 실내. =성상영 기자
◆이젠 어벤저가 '미니 지프'

어벤저는 내면보다는 외양이 뛰어난 차다. 이 차의 최대 무기는 감성 충만한 외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니 지프'라고 불린 레니게이드로부터 막내 지위와 함께 귀엽고 당돌한 생김새까지 물려받았다. 어벤저는 전장(길이) 4085㎜로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에서도 작은 축에 든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어벤저는 지프만의 감성이 잘 녹아있다. 전면에는 7칸으로 나뉜 세로 그릴이 당당함을 풍기며, 뒷모습은 제리캔(예비 연료통)의 'X'자 무늬를 형상화한 후미등이 미니 지프를 완성하고 있다. 랭글러나 글래디에이터 같은 정통 오프로더(험로 주행에 특화된 차)와 비교하면 순둥이 그 자체지만, 도시형 SUV 치고는 꽤나 다부져 보인다.

이른바 '지프다움'은 실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로로 쭉 뻗은 대시보드, 그 가운데 사각형 테두리가 도드라진 화면에서 '형님'들이 언뜻 비친다. 다만 군용차 같은 투박함보단 곡면을 통한 입체감이 강조됐다.

실내 구성은 단촐한 편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수납함을 곳곳에 배치하면서 간결함 속 실용성을 추구한 모습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공조, 주행 안전 기능 설정, 주행 모드 변경 같이 웬만한 버튼은 다 갖춰 조작이 불편한 점도 찾을 수 없다. 중앙 피아노 건반 형태 버튼은 지프와 같은 스텔란티스 계열인 푸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소다. 변속 버튼은 중앙 하단에 가로로 길게 배치됐는데, 보기 드문 형태여서 처음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차 크기가 작은 만큼 뒷좌석이 좁은 건 어쩔 수 없다.

지프 어벤저 대시보드에 차명과 '지프(JEEP)' 글자가 각인된 모습. =성상영 기자
지프 어벤저 대시보드에 차명과 '지프(JEEP)' 글자가 각인된 모습. =성상영 기자


오프로더 느낌은 제법 있다. 어벤저는 동급 전기차 중에서는 높은 최저 지상고(200㎜)를 확보했다. 경사면에 진입할 때 최대 허용 각도(진입각)는 20도, 벗어날 때 허용 각도(이탈각)는 32도에 달한다. 적어도 수치상 어지간한 오프로더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험로를 달리는 맛이라도 볼 심산으로 안산시 외곽에 있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봤다. 흙길은 곳곳이 패여 있었지만, 차량 바닥을 긁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전륜구동 전기차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프는 역시 지프다. 최저 지상고가 160~170㎜ 수준인 다른 전기 SUV와 비교해 추가된 30㎜가 주는 안도감은 컸다.

물론 본격적인 험로 주행에 나서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사륜구동이 아닐 뿐더러 모터 힘이 험난한 지형을 극복할 만큼 충분하지 않아서다. 각각 모래·진흙·눈길에 대응하는 샌드·머드·스노우 모드를 지원하지만, 앞바퀴 구동력을 조절하는 것만으론 부족함이 없지 않다. 길을 잘못 들어 예상치 못한 농로나 산길을 만나더라도 가슴을 졸이지 않는 정도다.

지프 어벤저 뒷좌석 =성상영 기자
지프 어벤저 뒷좌석 =성상영 기자

◆"전기차 멀미는 안녕, 가성비도 안녕"

주행 질감은 평균 이상이다. 전기차를 탔는지 모를 정도로 가·감속이 자연스럽다. 높은 차체를 감안하면 코너를 돌아 나갈 때 거동도 안정적이다. 승차감은 전반적으로 편안하지만, 급격한 조향에도 자세를 잘 잡아 준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았을 때 좌석 등받이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쾌감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런데 5000만원 넘는 가격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국산 경차에서 쉽게 보이는 생 플라스틱이 주를 이룬 탓이 크다. 좌석에 씌인 가죽도 요즘 차 치곤 거칠고 뻣뻣하다. 가격이 1000만~2000만원 더 저렴한 경쟁 모델들에도 내장 고급화가 시도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렵다. 유럽에선 어떨지 몰라도 한국 소비자는 '감성 품질'에 민감하다. 어벤저 가격은 기본형 론지튜드가 5290만원, 고급형 알티튜드가 5640만원에 달한다.

미약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는 편의성에 대한 불만족으로 이어졌다. 운전석에 마사지 기능은 있는데 통풍 기능이 없다. 스마트폰 연동 기능인 안드로이드 오토를 무선으로 연결해 사용했는데, 종종 먹통이 되는 것은 물론, 무선 충전 시 스마트폰 발열이 심해지면서 배터리 잔량이 오히려 감소했다.

지프 어벤저 후면모습. =성상영 기자
지프 어벤저 후면모습. =성상영 기자


범퍼 아래에 발을 갖다 대면 자동으로 열리는 전동식 트렁크, 빗물 양에 맞춰 동작 속도를 알아서 조절하는 우적 감지 와이퍼가 들어간 점은 높이 평가할 대목이다.

의외로 놀란 부분도 있다. 전비(소모 전력 대비 주행거리)가 매우 높게 나온다는 것이다. 배터리 잔량이 100%일 때 차를 받아 187㎞를 달린 뒤 남은 용량은 53%, 주행 가능 거리는 188㎞였다. 도심 기준 공인 1회 충전 주행거리 313㎞대비 70㎞는 더 탈 수 있다는 얘기다. 계기반에 표시된 전비는 킬로와트시(㎾h)당 8㎞나 됐다. 시승 구간 대부분은 시내 도로였다. 고속도로에서 90~100㎞/h로 달렸을 땐 6㎞/㎾h 안팎 전비가 나왔다.

곱씹어 보면 어벤저는 관점에 따라 선호도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 경차보다 반 체급 높은 크기에 오프로더 감성을 담아낸 건 어벤저가 가히 독보적이다. 문제는 전기차와 오프로더 모두 수요가 많은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벤저는 비주류 장르끼리 결합하면서 이 차를 구매하기까지 일반 전기차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게 돼 버렸다. 군용차에서 출발해 오프로드 머신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린 지프가 전기차 시대에 맞닥뜨린 딜레마다.

성상영 빅데이터뉴스 기자 ssy@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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