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분·세븐브로이, '곰표 밀맥주' 둘러싼 진실공방 세븐브로이 "레시피 탈취" 주장에 대한제분 "억울하다" 공식 입장 발표
편의점 CU에서 독점 판매된 곰표 밀맥주 사진. ⓒBGF리테일
[빅데이터뉴스 최효경 기자] 지난 2020년 국내 수제맥주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곰표 밀맥주'가 소송과 파산, 여론전으로 얼룩진 진흙탕 분쟁의 중심에 섰다. 공동 출시 주체였던 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가 2023년 계약 종료 이후 상표권과 레시피를 둘러싼 갈등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본질이 '누가 가해자인가'가 아니라, 이미 한물간 시장에서 더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하게 된 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 대한제분 vs 세븐브로이, 곰표 맥주 시즌2가 불러온 레시피 공방
대한제분은 지난 2020년 세븐브로이와 협업을 통해 자사 밀가루 브랜드 '곰표'를 활용한 밀맥주를 출시했다. 친숙한 캐릭터와 감각적인 패키징, MZ세대의 '가볍고 트렌디한 주류' 소비 패턴이 맞물리며 큰 성공을 거뒀다. 곰표 밀맥주의 출시 후 3년간 누적 판매량은 무려 6000만 캔으로, 편의점 수제맥주 붐의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지난 2023년 두 회사의 계약이 종료되며 상황은 급변했다. 대한제분은 세븐브로이와의 계약이 종료된 후 제조사를 새롭게 제주맥주로 교체하고, 곰표 밀맥주 시즌2를 새롭게 내놨다. 이에 세븐브로이는 "레시피를 탈취당했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세븐브로이측 주장에 따르면 대한제분이 자신들이 2020년 당시 6개월간 개발한 곰표 밀맥주의 레시피를 새로운 제조사 제주맥주에 무단으로 유출했고 세븐브로이는 대한제분과의 계약 만료 직전 생산했던 곰표 맥주 완제품을 전량 폐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약 25억원에 달하는 재고 피해를 입었다는 설명이다.
이후 약 2년간 이어진 갈등에 대한제분은 최근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대한제분은 세븐브로이가 주장하는 레시피 탈취와 관련해 곰표 밀맥주를 협업 출시하는 데에 있어 곰표 상표권만 제공했을 뿐 레시피는 세븐브로이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영역이었다고 설명하며 전면 부인했다. 법적으로도 상표권자에게 맥주 제조 레시피의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는 만큼, 제주맥주에 해당 레시피를 전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계약 종료 시점은 2020년 협업 시작 단계부터 정해져 있었고, 세븐브로이가 곰표 밀맥주의 흥행을 통해 3년간 800억원 대에 이르는 이익을 취하는 동안 대한제분이 받은 상표권 라이센스 로열티는 연평균 약 4억원, 총 12억원에 그치는데 불구하고 맥주 원재료와 원액의 소진에 대한 피해 금액까지 떠안기는 것은 '억지'라고 강조했다.
실제 업계 안팎에서는 레시피 자체가 무단으로 전달될 가능성은 낮다고 풀이한다. 특히 수제맥주의 경우 제조사만의 효모 배양 기술, 보관 방식, 발효 온도, 홉 조합 등 수많은 변수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 설령 유사한 스타일로 접근하더라도, 동일한 맛을 복제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게 정설이다.
◆ 세븐브로이, 기업회생절차 신청…경영난 원인은
세븐브로이는 최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세븐브로이는 대한제분과의 계약 종료를 계기로 경영난을 겪었다는 주장이지만, 일각에서는 국내 수제맥주 시장의 구조적 침체가 본질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세븐브로이의 매출은 △2022년 320억 원에서 △2023년 120억 원으로 60% 넘게 급감했고, 2024년에는 80억 원대까지 떨어졌다. 연속된 적자로 누적 손실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세븐브로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제맥주 시장은 2018년 약 630억 원 규모에서 2021년 2000억 원 이상으로 급팽창했지만, 이후 성장이 멈췄다. 다양한 맛과 병 디자인을 앞세웠던 MZ세대의 수요는 이내 RTD(Ready-to-drink), 하이볼, 일본 맥주 등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실제 제주맥주,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카브루 등 유력 수제맥주 브랜드들도 줄줄이 적자를 내거나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대형 주류사인 오비맥주와 롯데칠성은 수제맥주 사업에서 손을 뗐다. 수제맥주라는 시장 자체가 '붐'이 끝난 후 방향성을 잃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한제분과 새롭게 손을 잡은 제주맥주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우려를 나타낸다. 곰표라는 상징성과 브랜드 자산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과거와 같은 '핫 아이템'으로의 소구력은 이미 시들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세븐브로이는 대한제분과의 계약이 만료된 이후 기존 곰표 밀맥주의 레시피를 그대로 적용하되 제품 패키지, 브랜드 이름만 변경한 제품 '대표 밀맥주'를 출시하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미미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곰표 맥주가 다시 시장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은 낮고, 레시피 유사 논란까지 더해지며 오히려 브랜드 신뢰가 떨어지고 있어 긍정적인 전망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한때 국내 수제맥주 시장의 상징이었던 곰표 밀맥주가 현재 그 상징성을 소모하며 대한제분, 세븐브로이, 제주맥주 모두에게 부담만 안기고 있는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