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26일(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 킹 살만 자동차 산업단지 내 현대차 사우디 생산법인(HMMME)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현대차그룹
[빅데이터뉴스 성상영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전격 방문했다. 정 회장은 사우디에 건설 중인 현대차(005380) 신공장 현장을 둘러보는 한편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처음으로 단독 면담하고 '비전 2030' 계획과 관련해 논의했다. 오는 3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불과 사흘 남짓 앞두고 '틈새 경영'에 매진하는 모습이다.
28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정 회장은 27일(현지 시간) 사우디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에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이번을 포함해 총 세 차례이지만 독대는 처음 이뤄졌다. 정 회장은 앞서 2022년 빈 살만 왕세자 방한 당시 주요 그룹 총수들과 함께 면담 자리에 참석한 바 있다.
정 회장과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자동차 산업과 스마트 도시 분야에서 폭넓게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정 회장은 현대차가 사우디 킹 살만 자동차 산업단지에 건설 중인 현대차 사우디 생산법인(HMMME)을 소개하며 "사우디 산업 수요와 고객 니즈에 부응하기 위해 특화 설비를 적용한 현지 맞춤형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시장 상황을 감안해 생산 능력 확대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회동에선 비전 2030 협력 방안도 논의 주제로 다뤄졌다. 비전 2030은 사우디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 개발 프로젝트로 미래형 스마트 도시를 건설하고 산업 구조를 석유 중심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모빌리티 같은 유망 분야로 탈바꿈하는 장기 계획이다.
정 회장은 "사우디 비전 2030의 의미와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의 사업 역량을 기반에 두고 사우디 기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기가 프로젝트는 비전 2030 계획 중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추진하는 100억 달러(약 14조3000억원) 규모 이상 사업을 일컫는다. 정 회장은 이어 "신재생에너지, 수소, 소형 모듈 원자로(SMR), 원전 등 차세대 에너지 분야에서 다각적인 사업 협력을 기대한다"는 뜻도 빈 살만 왕세자에 전했다.
면담에 앞서 지난 26일에는 HMMME 현장을 둘러보고 현지 임직원과 성장 전략을 논의했다. HMMME는 현대차가 중동 지역에 처음으로 구축하는 생산 거점으로 지난 5월 착공해 내년 4분기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이곳에서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를 연간 5만대 규모로 생산하게 된다.
사우디 킹 살만 자동차 산업단지에 건설 중인 현대차 사우디 생산법인(HMMME) 전경 ⓒ현대차그룹
정 회장은 "사우디 생산 거점 구축은 현대차가 중동에 내딛는 새로운 도전의 발걸음"이라며 "고온, 사막 등 이전 거점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모빌리티를 적기에 공급할 수 있도록 모든 부문에서 철저한 준비를 해야한다"고 임직원에 당부했다. 이 자리에는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이 동행했다.
정 회장의 이번 사우디 출장은 지난 1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 '골프 회동' 이후 약 일주일 만에 이뤄진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골프 회동이 끝난 뒤에도 미국에 머무르며 관세 문제 대응과 북미 사업 점검 등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6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기업인 경제 대화'에 참석했다. 재계 안팎에선 정 회장이 10일 넘게 귀국하지 않은 배경을 두고 여러 관측이 나왔다.
정리하면 정 회장은 16일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18일), 사우디(26일)까지 3개국을 열흘 넘는 기간 순방하는 강행군에 돌입한 셈이다. 사우디 방문을 마친 뒤에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숨가쁜 일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 회장이 사우디 출장을 감행한 건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중동 지역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어서다.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오는 2030년 중동 지역 내 완성차 판매량은 300만대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사우디의 경우 지난해 80만대 가까운 자동차가 판매돼 중동에서도 손꼽히는 시장이지만, 국내에 마땅한 완성차 생산 시설이 없어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1~9월 기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5% 증가한 총 14만9604대를 사우디에서 판매하며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21만대를 판매 목표로 잡았다. 내년 말 HMMME가 본격적인 양산 체제에 돌입하면 연간 판매량 증가세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