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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작’ 낙인찍혔던 LS-VINA, 30년 후 효자 기업으로

2026-03-03 13:04:16

1996년 설립, 초기 시장 분석 실패로 위기 자초
시행착오 거쳐 동남아 1위 전선기업으로 탈바꿈
현지 직원의 솔선수범, 주재원의 소통이 원동력

LS-VINA 베트남 사업장 전경 사진= LS전선
LS-VINA 베트남 사업장 전경 사진= LS전선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LS전선의 베트남 현지법인이자, 동남아시아 지역 최고 전선 업체로 성장한 LS-VINA가 2026년 사업 개시 30년을 맞았다. LS-VINA의 역사는 LS전선의 베트남 사업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LS-VINA는 실패작으로 낙인찍히며 매우 미약하기 출발했다.

베트남에서 LS-VINA의 성장과 함께했던 명노현 ㈜LS 부회장은 “1996년 베트남에 처음 투자했을 때 (하이퐁에) 왔었다. 당시에는 하노이 직항로가 없었다. 호찌민시까지 대한항공 항공기를 타고 간 뒤 하노이까지 베트남 군용 비행기 베트남 항공기로 갈아타야 했다. 한국의 1960년대 상황 같았다. 호텔도 없었고, 호텔 전기도 자주 끊어졌다. 일반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베트남은 1994년 미국과 국교를 수립하고 무역상 최혜국 지위를 얻으면서 국가 인프라 구축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많은 외국 기업이 베트남 정부와 합작 회사 설립을 원하며 적극적인 구애 공세를 펼쳤다.

LS가 계열분리하기 전인 LG그룹 소속으로 있었던 LG전선도 1992년에 이미 베트남 진출을 위한 TFT를 구성, 제품 진출과 생산법인 설립을 검토했고, 하노이와 호찌민 간 약 1500km를 강심알루미늄연선(ACSR)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해 자신감에 차 있었다. 시장 여건도 매우 좋았다. 급증하는 전력 상황에 비해 베트남의 전력 케이블의 공급은 크게 부족했고, 제조 설비가 거의 없어 전체 물량의 90%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1995년 베트남 최대 전선 회사였던 휴막(HEWMAC)과 합작 계약을 체결, 1996년 LS-VINA의 전신이 ‘비나-LG케이블’이 설립됐다. 베트남 내에 중·저압 케이블과 절연전선, ACSR을 제조,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베트남은 향후 10년간 송배전선의 수요가 연간 400억~500억 원 이상으로 예상됐고, LS-VINA는 시장 점유율을 40% 이상으로 잡을 정도로 장미빛 미래를 꿈꿨다. 베트남의 자국 산업 보호정책에 따라 안정적인 생산, 판매를 예상했으며, 투자 자본의 조기 회수 및 LG그룹의 베트남 진출 시너지 효과도 기대됐다.
LG그룹은 비나-LG케이블을 베트남 최대의 종합전선 메이커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2000년까지 3차에 걸쳐 1만5000평 규모의 생산공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했고, 1996년 4월 11일 하이퐁에 중·저압용 전력 케이블 합작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총사업비 2300만 달러 가운데 LG전선과 LG상사(현 LX인터내셔널)가 각각 50%와 5%를 투자하고 베트남 최대 전력케이블 회사인 휴막이 나머지 45%를 투자해 건설한다는 조건이었다.

1997년 6월 23일 1단계 연산 6000t의 케이블을 생산하는 3000평 규모의 공장을 준공, 7월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당시 준공식에는 베트남 당 서기와 인민위원장, 한국 대사 등 두 나라 고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할 정도로 많은 관심과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가동 첫해에만 시장 점유율 40%에 매출 3000만 달러를 기록하는 등 장밋빛 전망이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LS-VINA는 합작사 설립 이후 곧바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애초에 현지 사업 환경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점이었다. 사업 초기의 실적은 참담했다. 공장 가동 첫해인 1997년 LS-VINA는 600만 달러 매출에 130만 달러의 영업손실을 냈다. 1998년, 1999년에도 30%가 넘는 영업손실률을 기록했다.
더구나 파트너사 사장(LS-VINA 부사장)의 부정, 공산주의 국가의 만장일치제도에 의한 의사결정 등 파트너사와의 불협화음이 자주 있었던 데다가 한국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까지 겹쳐서 본사의 지속적 지원의 어려움 및 과중한 이자율 부담으로 초기 사업 안정화는 불가능에 가깝게 여겨졌고, 사업 철수까지 고려될 정도였다.

베트남 내 중전압(MV) 케이블의 수요는 예측과는 달리 호찌민 이외 지역의 수요는 미미했으며, 베트남 전력청의 연간 입찰 역시 2000만 달러 이하로 당시 LS-VINA의 손익분기점 매출액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베트남의 입찰 제도가 공정하게 운용되지 못해 자체 수주 확보는 더욱 쉽지 않았다.

이러한 내수의 어려움을 동남아 시장 수출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으나 회사 및 제품의 낮은 인지도, 기술 축적 및 경력의 미흡으로 국제입찰의 경력 자격도 불충분했다. 파트너사가 현물 출자한 공장은 과대평가되어 있었고, 주력 설비의 가동률도 부족한 사실상 부도 상태였다. 부사장이 친인척 30여 명을 주요 보직에 배치하고 전횡을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축재의 수단으로 법인을 악용해 회사가 멍들어 가고 있었다.

회사는 1999년 강력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우선 부사장을 해고하고, 경영정상화 및 수익 창출 기반을 확보했다. 기존 설비를 이전, 보수하는 것 외에 신규로 설비를 도입해 생산능력을 향상했고, 시판 조직과 대리점을 신설하는 등 영업력을 강화했다. 조직 인원 축소 등 고정비 감소와 분위기 쇄신을 위한 노력, 철저한 상벌 주의 및 목표 개념 도입으로 내부 관리시스템을 정비하는 등 기존과는 다른 LS-VINA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구조조정에 앞장선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바로 베트남 직원들이었다. 부사장과 그의 친인척들의 전횡에 젊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고발 등이 이어졌고, 결국 그를 해고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베트남 합작법인이 현지 파트너사의 최고위 임원, 그것도 정부와 연관된 인사를 몰아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LS-VINA는 베트남 직원들의 노력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노사관계도 더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또한, 회사는 부사장의 부정 사건을 계기로 강력한 리더쉽 확보의 필요성을 느끼고 지분 구조를 재편,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립했다. 우선 파트너사가 현물 출자했던 공장을 반납하고 임대로 전환하는 동시에 현수식 연속 압출시스템(CCV) 라인과 기계설비를 현물 출자해 지분율을 81%로 끌어 올렸다. 증자와 정관 변경을 통해 마침내 LS-VINA의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동시에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업무들도 추진했다. 2004년 기존 자재 창고를 확장, 개조해 순도 99.9%의 전기동(Electrolytic Copper Cathode)을 용광로에 녹여 전선의 도체로 사용할 동봉(Cu-Rod) 설비를 설치, 2005년부터 상용 판매를 개시했다.

그동안 수입에 의존하던 Cu-Rod를 자체 생산하면서 t당 169달러의 원가절감이 가능해졌다. Cu-Rod동의 준공은 저전암(LV)과 MV 케이블의 원가경쟁력을 한층 높여 이후 LS-VINA가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과 10%대의 영업이익을 확보하는 토대가 되었다.

또한 ISO9001과 KS 인증으로 제품 인지도가 향상되어 기존에 입찰 자격요건이 되지 않거나 수주가 힘들었던 동남아 수출 시장의 활로가 열렸다. 베트남 내수도 연 7%에 이르는 경제성장에 따라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였으며, 고객의 니즈(Needs) 또한 MV와 고전압(HV), 특수 가공선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회사가 바뀌자 실적부터 달라졌다. 경영진의 부패 근절과 LS-VINA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의 결과, 2001년 첫 흑자를 기록했다. 2003년 누적적자를 해소했으며, 2004년에는 처음으로 배당을 실시할 수 있었다. 매출은 2001년 2300만 달러에서 2005년 5400만 달러로 급속히 늘어났다. 회사는 지속적인 내실 성장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LS-VINA는 이와 같은 안정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한번 대규모 신규 투자를 계획했다. 베트남 최고의 전선 회사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 최고의 전선 회사’의 중장기 비전을 설정하였다. 이후 전력 제품의 안정적인 성장과 수익을 바탕으로 종합 전선 회사로의 도약은 점차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 갔다.

LS-VINA가 사업 초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초고속 성장을 해 온 성공 신화의 가운데에는 다름 아닌 ‘사람’이 있었다. LS전선의 문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LS인 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베트남 직원들, 그리고 이들과 동고동락하며 회사를 일구어 온 그들의 ‘동료’인 주재원들이 바로 이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현지 사정을 잘 간파하지 못한 채 뛰어든 베트남 사업 초기의 시행착오는 오히려 약이 됐다. 베트남 직원 스스로의 손으로 일할 수 있는 사업 구조를 만들면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한국에서 건너간 주재원들은 이들에게 장기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깊은 신뢰를 쌓는 데 주력했다. 무엇보다도 베트남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갖게 한 것이 생산성을 높인 결정적인 동력이 되었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베트남 직원들을 교육해 일을 맡겼다. 지시나 평가도 한국인이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왼쪽 네 번째부터) 구본규 LS전선 대표, 이상호 LS에코에너지 대표, 장동욱 LS-VINA 법인장 등 참석자들이 1일 베트남 하이퐁 사업장에서 열린 LS-VINA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LS전선
(왼쪽 네 번째부터) 구본규 LS전선 대표, 이상호 LS에코에너지 대표, 장동욱 LS-VINA 법인장 등 참석자들이 1일 베트남 하이퐁 사업장에서 열린 LS-VINA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LS전선
LS에코에너지는 지난 1일(현지시간) 베트남 하이퐁에서 LS-VINA(비나)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개최해 지난 시간의 업적을 추억했다.

설립 초기 약 60억 원 규모였던 매출은 현재 약 1조 원 수준으로 확대됐다.

회사 측은 LS-VINA가 현재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 1위 전선 기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베트남에서 초고압 케이블을 직접 생산·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전력청(EVN)의 핵심 공급업체로, 현지 전선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고 초고압 부문에서는 약 80%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하이퐁 생산기지에서는 HV‧MV·LV 케이블과 가공선 등을 생산한다.

내수 중심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아세안은 물론 유럽과 북미 등으로 수출을 확대해 베트남 최대 전선 수출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동남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망과 유럽, 싱가포르, 호주 등지의 전력망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LS-VINA는 2030년 매출 10억 달러(약 1조4500억 원) 달성을 목표로 글로벌 전력 인프라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구본규 LS전선 대표는 “허허벌판에서 시작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온 현지 임직원들의 노력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의 30년은 LS-VINA가 글로벌 톱티어 전력 인프라 기업으로 도약하는 새로운 여정이 될 것이며,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사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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