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2026년 3월 25일은 국내 1위 해운사 HMM의 창립 50주년 기념일이었다.
회사는 24일 창립기념식을 개최해 ‘Move Beyond Maritime’이라는 비전을 선포하고, 비전 실현을 위한 전략 방향으로 ‘W.A.V.E’를 제시하며, 시작할 50년 미래를 다짐했다. 창립 기념일에 맞춰 50년 사사(社史)를 공개했다.
그리고 끝이었다. 많은 기업이 반백 년 역사를 채운 해에는 사내 기념식에 이어 이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행사와 이벤트를 열고, 50년의 의미를 담은 마케팅 홍보를 진행한다. 하지만 HMM은 내부 행사만 하고 조용히 넘어갔다.
회사가 처한 사정에 따라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HMM도 현재 전시 상황에 준하는 비상근무 체제를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공, 이란의 반격 등으로 호르무즈해협이 봉쇄에 이어 홍해에 이르기까지 중동 전역이 위험지역으로 분류되면서 HMM을 비롯한 전 세계 모든 선사는 이 지역을 운항하는 유조선과 컨테이너 화물선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한국 본사에서 잔칫상을 차리는 건 맞지 않다.
그럼에도 국내 1위 대형 선사로서 위기를 극복하고 부활의 스토리를 쓴 기업이라는 상징성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든다.
이와 관련, 해운업계는 전쟁과 함께 서울 본사의 부산 이전 이슈가 HMM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부산 이전은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 공약으로, 해양수산부를 비롯해 해양 정부 부처 기관이 내려가 조성하려는 해양 수도권 구상에 해운업체도 동참할 것을 권유하면서 비롯됐다. 민간은 선택을 자율적으로 하라고 하지만, HMM은 업계 1위 업체이기 때문에 해양 수도권 구상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긴다. HMM은 공적기금이 투입됐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대주주라 최고 경영진을 구성하는 데 있어 정부 입김이 미치는 공기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므로 정부 정책을 무조건 외면할 수 없는 처지다.
국가 경제를 위한다는 명분에서 보면, 기업에 부산행을 제안하는 게 문제 될 건 없다. 자율적으로 선택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권유하는 사함이 이를 되풀이 하면, 받아들이는 이로선 다르게 이해할 수밖에 없다. 6월 3일로 예정 지방선거도 예정되어 있어 부산 이전이 정치적 이해관계로 엮이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정부가 서울 밀집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세종 행정도시를 만들었고, 공기업 본사의 지방 이전도 단행했다. 그럼에도 서울 경제권 집중 현상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자. 지방 자치단체가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지만, 민간기업의 지방행이 더딘 이유는 사업에 직접적인 측면과 함께 간접적인 인프라 측면에서 서울 프리미엄과 메리트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HMM이 해운사이기 때문에 자사 배가 입출항하는 바다를 앞에 끼고 있는 부산이 아닌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유도 그렇다. 이미 매출에서 해외 비중이 높은 회사다. 자율운항 시스템을 개발해 한반도 반대편 해양을 무인 운항하는 화물선을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도 원격 관리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해운 업계의 경쟁력을 측정할 때 보유 선대뿐만 아니라, 금융 조달과 화주 확보, 인재 확보 등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가 풍부한 지역에 본사를 두었는지 아닌지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HMM 임직원 입장에서 부산 이전을 고려해 봐야 한다. 본사 이전은 직원 개개인의 생활 터전을 바꾸는 것이다. 익숙해 있는 공간에서 전혀 생소한 곳으로 옮겼을 때 감내해야 할 스트레스도 크다. 부산 이전이 확정되면 많은 직원이 직장을 포기할 수 있다.
4월이면 HMM은 경에 부산 이전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인데, 직원들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정부 요인과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고 있다. 이러니 매우 답답하고 불안할 것이고, 50주년 행사가 흥이 나지 않았을 거다.
HMM은 애써 태연한 모습이다. 사내에서 부산 이전과 관련해 사내에 어떤 공지가 내려온다던가 논의가 없었고, 사원끼리 찬반투표를 하는 등 의견을 묻는 절차도 전혀 없었다고 설명한다.
대신, HMM 육상노동조합이 지난 3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기업의 내실보다 정치적 목적을 우선시하는 본사 이전 추진을 강력히 반대한다”며 법적조치와 함께 4월 2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총파업 결의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