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컨테이너 운송 서비스 급성장 대응위해 컨테이너영업본부 등 5개 본부 체제로의 조직 정비 공동운항 의한 PSW, PNW 서비스 분리, DST 도입 사업 성장 후 단독운항 실시하며 시장점유율도 상승
현대상선의 컨테이너 운반선이 컨테이너를 싣고 항해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1984년 3월 덴마크 선사 EAC에 PSW항로 유휴 선복을 매각하는 한편, 6월부터 일본 선사 K-Line의 PPNW항로 선복을 매입함으로써 PNW항로를 특화시켰다. 사진= 현대상선 20년사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1980년대 후반 세계 해운시장은 컨테이너사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며 대형화·글로벌화의 시대로 진화하는 중이었다. 컨테이너가 해상무역의 주류 운송 방식으로 빠르게 정착된 것이다. 특히 북미~유럽, 북미~아시아 항로에서 컨테이너의 비중은 급속도로 증가했다. 선진국들도 주요 항만에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을 건설해 운영하고 있었다.
컨테이너 무역이 급성장하자 선사들은 대형 컨테이너선을 앞다퉈 투입하고 나섰다. 그 결과 1970년대에 등장했던 2000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급의 선박에서 1980년대 후반에는 3000~4000TEU급으로 대형화하여 컨테이너 수송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대형화 추세와 더불어 운송단가 절감을 위한 경쟁도 본격화했다.
머스크(Maersk, 덴마크), 에버그린(Evergreen, 대만), APL(미국) 등 글로벌 선사들은 공동운항 혹은 슬롯 교환(Slot Exchange) 등의 방식으로 컨테이너 항로의 확장을 시도했다. 아직은 대형 얼라이언스(Alliance)로 발전하기 전 단계였지만, 선사들의 협력 체제가 가동되기 시작한 것은 컨테이너 무역의 성장을 촉진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NYK, MOL, K-Line 등 일본 선사들을 비롯해 에버그린, OOCL홍콩 등이 북미·유럽 항로에서 급성장했다. 한국과 중국의 선사들도 본격적으로 컨테이너 정기선 시장에 진입하며 컨테이너선사업 확장을 모색했다.
한국 선사들 중에서는 한진해운이 비교적 일찍 미주 항로에 취항한 후 미주·유럽의 항로를 확대하며 당시 한국 최대의 컨테이너 정기선사로 성장했다. 고려해운·장금상선 등 중소 선사들도 아시아 역내의 근해 항로를 중심으로 컨테이너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이처럼 해상운송에서 컨테이너화가 빠르게 진행되자 정부도 컨테이너화가 곧 무역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항만시설 투자, 국적선사 정기선 진출 지원, 해외 항로 개척 지원 등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았다. 항만들도 변화에 동참했다. 부산항은 1978년 처음으로 컨테이너 터미널을 개장한 이후 시설을 확장하여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동북아의 허브항으로 성장했다. 인천항과 광양항에서도 컨테이너 전용 시설 확대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현대상선은 미주 항로에 취항한 이후 컨테이너선사업의 조기 정착과 확대를 위해 기존의 벌크선·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중심의 영업에서 컨테이너 중심의 영업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켰다.
이를 위해 1987년 3월 본사 조직을 컨테이너영업본부, 재래정기선영업본부, 부정기전용선영업본부, 관리본부, 해사본부 등 5개 본부 체제로 대폭 개편했다. 컨테이너영업본부 산하에는 컨테이너국내영업부, 컨테이너해외영업부, 컨테이너기기관리부 등 3개 부서를 두어 각각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의 영업활동을 대폭 강화하기로 하고 1988년 7월 1일 ‘아세아상선㈜’을 설립했다. 현대상선은 해외 운항과 인바운드 영업을 담당하고 아세아상선은 미주·중동향 철제품 및 일반 제품의 국내 화물 확보에 주력한다는 구상이었다. 사명은 현대상선의 옛 이름과 같지만 그 역할과 성격은 완전히 다른 법인이었다.
현대상선 컨테이너가 미국 LA에서 싼타페(Santa Fe)의 DST에 실려 뉴욕으로 가고 있다. 사진= 현대상선 20년사
현대상선은 전략적으로 미주 항로의 컨테이너선사업을 강화하기로 하고, 1986년 9월 2800TEU급 신조선 5척을 미주 항로에 투입했다. 컨테이너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 본부 체제로의 조직 개편도 단행한 상태였으므로 미주 항로의 활성화를 위해 조직 역량을 집중했다.
1988년은 미주 영업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의미 있는 한 해가 되었다. 서비스 다양화로 화주의 만족도를 높임으로써 미주 영업의 조기 안착과 성공적인 사업 기반을 구축한 것이다.
당시 미주 항로에서는 대부분의 선사들이 화주들의 수송일수 단축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PNW(미주 북서안)와 PSW(미주 남서안)를 분리하고 동남아시아 지역으로까지 항로를 연장하는 추세였다. 하지만 당시 현대상선은 PSW를 거쳐 PNW로 운항하는 형편이었으므로 PNW 지역의 운송일수는 경쟁사들보다 1주일 이상 더 소요되었다. 그렇다 보니 PNW 지역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고 화주들의 만족도도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1988년 3월 전용 DST(Double Stack Train, 이단적열차) 서비스를 시작했다. 4월과 6월에는 덴마크 EACEast Asiatic Co., 일본 K-Line과 공동운항 체제도 구축했다. PSW에서의 잉여 선복은 EAC에 임대하고 PNW의 부족한 선복은 K-Line에서 임차하는 방식을 적용함으로써 PNW와 SW를 분리하고 선복에 대한 부담도 완화한 것이다.
PNW 서비스망을 이용해 부산에서 시애틀·포틀랜드로 직항하는 서비스를 시작함으로써 현대상선은 트랜짓 타임을 5~6일 이상 단축할 수 있게 되었다. 1988년 7월에는 현대 코멘더(Hyundai Commander)호가 취항하면서 PSW 항로에서 총 6척의 2800TEU급 선단을 운항할
수 있게 돼 경쟁력이 더욱 높아졌다. 이에 따라 미주 항로에서 다른 선사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1991년 3월에는 PSW 항로에서 EAC와의 공동운항을 종료하고 단독운항을 시작했다. 또 PNW 항로에서는 K-Line과의 제휴를 바탕으로 직항 서비스를 제공한 데 힘입어 시장점유율을 종전의 1.3%에서 5%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1990년 초 K-Line이 현대상선에게 PNW 항로의 임차 선복량을 줄이자고 요청해 왔다. 이에 1990년 7월 현대상선은 임차 선복량을 기존 500TEU에서 300TEU로 축소하고, 이를 대신하여 NYK와 항차당 400TEU의 선복을 임차하는 공동운항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은 한국·일본~미주서안 항로에 PNX(Pacific Northwest Express Service, 일명 PNW-2)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94년 3월 현대상선은 PNW 항로에서 K-Line과의 공동운항을 종료하고 5척의 2000TEU급 선단을 투입했다. 이에 따라 PNW 항로에서도 단독운항을 개시하며 독자적인 영업체제를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