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뉴스 유명환 기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이후 8개월간 집행한 업무추진비(업추비) 약 1668만원의 세부 내역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동안 월별 건수와 금액만 공개해 온 관행을 깨고 건별 사용 목적과 식당 상호까지 투명하게 공개한 것으로, 이복현 전 원장 시절 불거진 '심야 사적 유용 의혹'과 정보공개 소송 패소가 이어진 상황에서 자체 쇄신 의지를 드러낸 행보로 풀이된다.
2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전날 홈페이지에 '기관장 업무추진비 세부 집행내역'을 공개했다. 이 원장은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올해 3월까지 총 1668만원, 76건의 업추비를 사용했다. 월평균 사용금액은 약 209만원이다.
공개 내역에는 건별 금액과 사용 목적, 식당 상호 등이 상세히 담겼다. 집행 상당수는 금감원 인근 여의도 소재 식당에서 이뤄졌다. 사용 목적별로는 △직원 격려 및 의견 청취 △금융감독 현안 논의 △언론사 간담회 △경조사비 등이 주를 이뤘다. 지난해 8월 중순에는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 격려용 다과 구입에 162만원이 지출됐다.
이번 공개는 그동안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금감원의 관행을 처음으로 깬 사례로 평가된다. 금융위원회는 매 분기 위원장·부위원장·고위공무원의 업추비 집행 일시·장소·목적·금액을 모두 공개해 온 반면, 금감원은 매년 한 차례 3개 목적으로 나눠 월별 건수와 금액만 공개하는 데 그쳤다.
특히 이번 공개의 배경에는 이복현 전 원장 시절 업추비 비공개를 둘러싼 행정소송 패소가 있다.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제기한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에서 금감원은 지난해 6월 1심에 이어 이달 9일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금감원은 식당 상호 공개 시 가맹점 영업 불이익과 감독 현안 유출 가능성을 들어 비공개를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원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부임 이후의 업무추진비는 전부 공개하겠다"고 약속했고, 지난 2월 발표한 올해 업무계획에서도 감독행정의 투명성·공정성 제고 차원에서 기관장 업추비 상세 내역 공개를 거듭 밝혔다. 이번 공개는 이 같은 약속의 첫 이행 조치다.
이복현 전 원장 시기에는 업추비 부당 집행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다. 정보공개센터는 이달 22일 감사원에 이 전 원장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하면서 △고급 식당 이용 후 참석 인원 허위 기재 의혹 △자택 인근 서울 서초구에서의 밤 10시 이후 상습 결제 △동일 일자 2차·3차 연속 집행 등을 위법·부당 집행 정황으로 지목했다. 이 전 원장이 동일 식당을 5일 간격으로 3회 방문하면서 매회 '10명, 29만원, 간담회'로 동일하게 기재한 사례가 8건에 달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다만 금감원의 투명성 강화에는 한계도 지적된다. 이번에 세부 내역이 공개된 것은 기관장 업추비에 한정되며, 임직원 업추비는 여전히 분기별 건수·금액 위주의 공개에 머물러 있다. 금감원은 공공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임직원 업추비 전면 공개에는 부정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금감원은 금융회사 감독분담금과 일부 정부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관장 한 명의 업추비를 공개한 것은 의미 있는 첫걸음이지만, 임직원 전체로 확대돼야 진정한 투명성 제고로 평가받을 수 있다"며 "법원 판결로 이복현 전 원장 시기 내역도 공개가 불가피해진 만큼, 사후 감사와 환수 절차가 함께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