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등이 표시되고 있다. 코스피는 이날 전날보다 31.01포인트(0.34%) 내린 9,083.54에, 코스닥지수는 9.76포인트(1.01%) 내린 958.64에 개장했다.[사진=연합뉴스]
[빅데이터뉴스 유명환 기자] 전날 사상 첫 종가 9100선을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던 코스피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쏠림 후폭풍과 국민연금 리밸런싱(자산 재배분)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10% 가까이 폭락해 서킷브레이커(CB·매매거래 일시중단)가 발동됐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910.71p(9.99%) 내린 8203.84에 장을 마쳤다. 지수는 0.34% 하락 출발한 뒤 급격한 우하향 곡선을 그리며 오전 11시40분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장마감 직전인 오후 2시 33분에는 코스피가 전일 종가 대비 8.07% 하락한 8378.25를 기록하자 1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20분간 모든 매매가 중단됐다. 6월 8일 이후 불과 2주 만의 재발동으로 올해만 4번째다.
폭락의 방아쇠는 간밤 뉴욕증시의 AI·반도체 대형주 동반 급락이었다. 아마존(-4.75%)·마이크로소프트(-3.18%)·메타(-2.32%)·엔비디아(-0.97%) 등이 일제히 무너지며 AI 산업 내 가격 경쟁 심화와 수익성 훼손 우려가 국내 증시로 직격탄을 날렸다.
전날 코스피 시총 1위로 올라선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각각 5%가량 급락하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고 SK하이닉스와 SK스퀘어 두 종목만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1조원에 달했다.
여기에 국민연금의 선제적 리밸런싱 물량까지 가세하며 낙폭을 키웠다. 국민연금은 이달 들어 22일까지 코스피시장에서 2조4980억원을 순매도했으며 최근 일주일(15~22일)에만 1조4030억원을 집중 매도했다.
올해 초 기금운용위원회를 통해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5.9%p 상향하고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 범위도 28.8%까지 넓혔으나 코스피가 9100선까지 치솟으면서 실제 비중이 30%를 넘어선 데 따른 것이다. 7월 1일부터 새 목표비중이 정식 적용되는 만큼 이달 말 유예 종료를 앞두고 선제 매도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1년 선례가 이번 폭락의 구조적 경고로 재소환된다. 코스피가 3000선을 돌파하자 국민연금은 2021년 1월부터 51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가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었고 당시 국내주식 비중이 목표치(16.8%)를 21.2%까지 초과하자 강도 높은 비중 조절에 나선 바 있다. 이번에는 시장에서 국민연금이 허용 범위를 초과한 비중 조정을 위해 최대 55조~60조원을 추가 매도해야 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거래소(KRX)와 넥스트레이드(NXT) 합산 기준 5조7925억원을 투매했다. 반면 개인은 11조1124억원을 순매수하며 역대 최대 단일일 순매수 기록을 세웠다.
코스닥지수는 76.88p(7.94%) 내린 891.52에 마감하며 900선이 붕괴됐다. 코스닥시장에서도 오전 9시6분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서킷브레이커와 매수·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횟수가 올해만 30번째에 달하는 등 반도체 집중도가 높은 지수 구조의 고변동성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민연금이 이달 말 리밸런싱 유예를 종료하면서 7월 이후에도 분산 매도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전진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주식 비중 상향이 기계적 매도 압력을 줄이는 긍정적 효과는 있지만 전 세계 자본시장의 2% 미만에 불과한 국내 시장에 과도한 비중을 설정함으로써 글로벌 분산투자 효과가 저해됐다"며 "자산배분이 국내 증시 부양이라는 정책 가이드라인에 밀려 결정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AI 산업 펀더멘털 악재는 아닌 만큼 하단은 어느 정도 지지될 것이나 반도체 대형주 집중 구조가 유지되는 한 변동성 확대 국면은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