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뉴스 김성민 기자] 성범죄 사건은 CCTV나 녹음, 목격자와 같은 객관적인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와 피고인의 진술이 엇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성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면 "피해자 진술밖에 없는데도 유죄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는 경우가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피해자의 진술 역시 형사재판에서 증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피해자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직접증거라고 하더라도 그 진술에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신빙성이 인정된다면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피해자가 범죄 피해를 주장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려면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 피해자 진술이 중요한 증거가 되는 사건에서도 그 진술이 얼마나 일관되고 구체적인지, 객관적인 사실관계와 부합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대법원은 2025년 9월 11일 선고한 2024도15182 판결에서도 이러한 판단 기준을 다시 확인했다. 해당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직접증거가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뿐인 경우에는 그 진술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신빙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피해자 진술의 주요 부분이 일관되고 구체적인지, 진술 내용이 논리와 경험칙에 비춰 합리적인지, 진술 자체에 모순이 있거나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과 배치되는 부분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불리한 허위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있는지 역시 판단 요소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부분은 진술의 모든 부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동일해야만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범행의 핵심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주변적인 사항에 대한 기억이나 표현이 일부 달라질 수 있다. 대법원도 이와 같은 사소한 사항에 다소 일관성이 없다는 사정만으로 피해자 진술 전체의 신빙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2024도15182 사건에서도 1심은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일부 진술의 차이 등을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항소심이 지적한 사정들이 이미 수사 및 1심 과정에서 문제됐거나 1심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면서 고려했던 여러 사정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고 봤다. 결국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성범죄 피해자의 사건 전후 행동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도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은 2018년 선고한 2018도7709 판결 등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의 대응 방식은 피해자의 성향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사건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예를 들어 사건 직후 바로 신고하지 않았거나 사건 이후에도 상대방과 연락을 계속했다는 사정만을 떼어놓고 '일반적인 피해자의 행동과 다르다'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성범죄 피해자가 반드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고정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리가 피해자 진술을 무조건 신뢰해야 한다는 의미 역시 아니다. 피해자의 진술을 판단할 때에는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과 일관성뿐 아니라 피고인의 진술, 사건 전후의 객관적인 정황과 자료 등을 함께 비교해야 한다.
실제 사건에서는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 통화내역, CCTV, 차량 블랙박스, 카드 결제 및 이동내역, 숙박시설 출입기록 등 다양한 자료가 당시 상황을 확인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진술이 달라진 부분이 어디인지도 중요하다. 범행이 이루어진 장소나 구체적인 행위, 당시 의사표시 등 범죄 성립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핵심적인 내용이 반복해서 달라진 경우와 사건의 핵심과 관계없는 주변적인 사항에 대한 기억이 일부 달라진 경우를 동일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성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면 단순히 피해자 진술 가운데 일부 표현이 달라졌다는 사실만 찾아내는 데 집중하기보다 전체 진술의 흐름과 객관적인 자료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객관적인 증거가 없고 상대방 말밖에 없으니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피해자 진술 자체가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조사를 앞두고 있다면 사건 전후의 대화내용이나 이동기록 등 확보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확인하고, 피해자의 주장 가운데 자신과 입장이 다른 부분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리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직접증거라는 이유만으로 증거가 부족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반대로 피해자의 진술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유죄가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과 구체성, 내용의 합리성, 객관적인 자료와의 부합 여부, 사건 전후 정황과 피고인의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