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6월 인도한 석유시추보급선 2척 중 1호선 ‘스미트 로이드 118’에서 트루크 국적 ‘산자르호’ 6월 6일 하자르(Hazar)에서 출항 카스피해 운랑중 국제규격상 내구연한 25년을 두 배 넘긴 기록적 사건
삼성중공업이 1979년 4월 해외 선주로부터 수주해 처음 건조한 석유시추 보급선 ‘산자르’호. 이 선박은 1980년 6월 선주인 호주 벌크십에 ‘스미트 로이드 118’란 이름으로 인도했다. 이후 선주가 바뀌면서 6차례에 걸쳐 이름도 변경되어 아르제르바이잔 국적으로 현재의 선명으로 카스피해 주변을 항해하고 있다. 사진= 마린트래픽(Marinetraffic) 사이트 갈무리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대한민국 조선 빅3가 해외 선주로부터 처음 수주한 선박 가운데 여전히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는 배가 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가 건조한 선박이 주인공으로 조만간 선령 50살을 채울 전망이다.
16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1979년 4월 19일 호주 해운 그룹 벌크십과 석유시추보급선 2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1척당 가격은 550만 달러였다. 그해 평균 원·달러 환율이 484.00원이었으며, 원화로 환산하면 두 척의 수주액은 53억2400만 원이었다. 2026년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2520만 달러(약 382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석유시추보급선은 석유 시추선에 각종 물자를 지원 보급하고 기타 작업을 지원하는 작업선으로, 크기는 작지만 구조와 기능이 복잡하기 때문에 경험이 없으면 쉽게 건조할 수 없다. 지금은 계약을 체결하고 설계에서 건조 후 완공해 선주에 인도할 때까지 통상 1년 반에서 2년의 기간을 거치지만, 삼성중공업은 1년 만에 이 모든 과정을 마쳤다. 이에 당시 90%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던 거제 조선소 건설 작업도 중단하고 전 임직원이 선박 건조에 매달렸다.
1979년 9월 건조의 시작을 알리는 강제절단에 이어 12월 기공식을 가진 삼성중공업은 이듬해인 1980년 6월 명명식을 가졌다. 1호선은 ‘스미트 로이드 118(SMIT LLOYD 118, IMO 넘버 7914468)’의 이름으로 인도했고, 2호선은 두 달 후 ‘스미트 로이드 119(SMIT LLOYD 119, IIMO 7914470)’로 바다로 나아갔다. 선박 제원은 길이 64m, 폭 13m이며, 중량은 2100t, 총톤수(G/T)는 1474t이다.
두 선박은 여러차례 선주와 선명을 바꿨는 데, 지금도 운항하고 있는 선박은 ‘스미트 로이드 118’이다. ‘머스크 헬퍼(MAERSK HELPER, 1992년)’, ‘스카우트 피쉬(SCOUT FISH, 1997년)’, ‘렘 컨테스트(1998년)’, ‘레드 커모런트(1998년)’, ‘시 벌크 코모런트(SEABULK CORMORANT, 2010년)’, ‘씨엠 코머런트(2013년)’를 거쳐, 2018년부터 국적이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바뀌며 ‘산자르(SANJAR)’란 이름을 새로 받아 해상 예인선(보급선)으로 중앙아시아 내륙의 카스피해 및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대서양 항로를 운항하고 있다. 최근엔 6일(현지시간) 투르크메니스탄 하자르(Hazar)에서 출항해 카스피해 내 하자르(Hazar) 및 람 주다노프 필드(Lam ZHD Field) 인근을 지나가고 있다.
‘스미트 로이드 119’는 ‘머스크 핸들러(MAERSK HANDLER, 1992년)’, ‘파일롯 피쉬(PIOLT FISH, 1994년)’, ‘카랑귀(CARANGUE, 2009년)’, ‘메가 원(MEGA ONE, 2014년)’에서 파나마 국적의 ‘디아블로스 프라이드(DIAVLOS PRIDE, 2018년)’으로 바꿨다. 이 선박은 2018년 12월 12일 터키 알리아가 해변에 좌안(Beached)되면서 선박으로서의 수명을 마감하고 퇴역 및 해체(Scrapped)됐다.
1980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1도크에서 회사가 해외선주로부터 처음으로 수주한 석유시추보급선 2척이 건조되고 있다. 사진= 삼성중공업
수요 공급 측면에서 봤을 때 선박의 수명은 대개 20년 정도를 잡고 있었으나, 2006년 발효된 선체구조에 관한 일반 규칙(CSR, Common Structural Rules)에 의해 25년으로 연장되었다. 이에 선체의 부식, 선체 피로강도 및 모든 기계의 마모에 대한 내구연한을 25년 기준으로 설정한다. 돌발변수가 없는 한 선박은 25년이 지나면 해체하여 고철로 처리하는 것으로 가정한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1호선은 이같은 선박 수명 기준을 훨씬 넘어서며 현역에 남아있는 것이다. 인도 직후부터 폐선 처리될 때까지 운항해야 하는 유조선이나 컨테이너운반선 등과 달리 석유시추보급선은 운항 거리가 길지 않고, 동종 선박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게 아닌 데다가 선박 관리도 충실하게 해줬기 때문에 장수를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향후 글로벌 조선 빅3의 한 축인 삼성중공업 거제 조선소 임직원들이 정성을 들여 건조해, 품질과 성능이 좋았던 것도 작용했다.
관련해 삼성중공업이 거제조선소를 건설하면서 처음으로 건조한 선박은 ‘불배’, 즉 어징어잡이용 어선이었다.
거제조선소는 1977년 문을 열었다. 그런데 조선소가 완성되자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해운 불황으로 인해 수주활동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500여 명의 기술자들 가운데에는 조선소 건설 초기인 1974년부터 일본으로 날아가 기술을 배워온 연수생들도 있었다. 당시 “유용한 자료를 익히고 돌아갈테니 우리가 돌아가면 머릿속의 자료를 이용해 회사를 발전시켜 달라”는 말을 남길만큼 조선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면 밤낮없이 배울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배워왔다.
그런 인재들이 모여 작품을 만들어보자고 했는데, 조선소가 완성되자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해운 불황으로 인해 수주활동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자칫 긴장감이 풀리고 기왕에 닦은 기술이 퇴보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자칫 긴장감이 풀리고 기왕에 닦은 기술이 퇴보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무작정 수주만을 기다릴 수는 없어서기술자들은 우선 조선소에서 운영할 1000t 바지선과 2600PS 예인선 등 건조작업에서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 장치물들을 개발하는 일종의 ‘시간 때우기’로 버텼다. 선각공장을 비롯해 목공장, 유틸리티 센터, 대조립공장 자재창고 트러스 제작 등 일련의 작업들과 각종 기초공사 및 도로 포장공사도 이 시기에 다 해냈다. 일에 재미를 붙인 기술자들은 신축 사택의 비품과 심지어 어린이 놀이터 미끄럼틀까지 만들어냈다.
그러다 거제조선소에서 최초로 배, 불배 4척을 만들었다. 이 소형 어선 제작 건은 인근 S조선에서 어렵사리 따내 온 것이었다. ‘조선쟁이들이 일손 놓고 있으면 기술이 녹슨다’는 위기감에서, ‘기술에 녹이 슬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이 작은 배라도 만드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삼성중공업 초창기 기술자들에게는 보잘것 없는 ‘불배’ 4척이 더 큰 의미로 가슴에 남는다고 한다. 값진 기술을 ‘녹슬지’ 않게 해준, 아울러 스스로가 ‘조선쟁이’임을 각자에게 일깨워 준 고마운 배였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