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공급과잉에 고부가 소재로 돌파구...연구개발 경쟁 가속 LG화학 1조3175억원 투자·매출 대비 5.0%...규모·비중 모두 선두 한화·금호석화 투자 확대 속 롯데케미칼 감소...절대 규모는 3위
여수 석유화학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빅데이터뉴스 김유승 기자]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장기 불황에 빠진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연구개발(R&D)을 통해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주요 석유화학 기업 가운데 LG화학은 연구개발 투자 규모와 매출 대비 비중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금호석유화학은 가장 높은 투자 증가율을 기록했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금호석유화학 등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 4곳의 올해 상반기 연구개발비는 총 1조5214억원으로 집계됐다. LG화학과 금호석유화학은 연구개발비와 매출 대비 비중이 모두 증가했다. 한화솔루션은 투자액이 늘었지만 비중은 낮아졌고, 롯데케미칼은 두 지표 모두 감소했다.
기업별로 보면 LG화학은 올해 상반기 연구개발에 1조3175억원을 투입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조1552억원보다 14.0% 늘어난 규모로, 주요 석유화학 기업 중 유일하게 조 단위 투자액을 기록했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도 4.9%에서 5.0%로 0.1%포인트 상승해 조사 대상 기업 가운데 가장 높았다.
LG화학은 석유화학 사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첨단소재 기술 확보에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석유화학연구소에서는 고기능 신소재와 촉매·공정 기술을 비롯해 재활용 및 탄소중립 관련 신공정을 개발하고 있다. 연구 범위도 차세대 반도체·전지 소재와 친환경 원료 등으로 넓혔다. 특히 인공지능(AI) 기반 계산화학과 시뮬레이션 기술을 도입해 신소재 개발과 생산공정 개선에도 활용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4개사 중 유일하게 연구개발비를 줄였다. 상반기 투자액은 655억원으로 전년 동기 675억원 대비 3.0% 감소했다. 매출 대비 비중도 0.8%에서 0.6%로 0.2% 낮아졌다. 다만 절대적인 투자 규모는 LG화학과 한화솔루션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투자액 감소와 별개로 고부가 제품 개발은 이어가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전기차 이차전지 분리막에 사용되는 고밀도폴리에틸렌(HDPE)과 폴리프로필렌(PP) 소재 기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함께 높은 강도와 내마모성을 갖춘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과 경량화에 활용되는 발포용 PP도 개발하고 있다.
한화솔루션 역시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했다. 올해 상반기 연구개발비는 107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942억원보다 14.0% 증가했다. 다만 매출 증가에 따라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3.23%에서 2.97%로 0.26% 낮아졌다.
연구개발은 친환경 플라스틱과 고기능 합성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활용 원료를 활용한 PCR 폴리올레핀(PO) 제품을 포장재와 자동차·전자제품 등에 적용하기 위한 상업화를 추진 중이다. 고효율 저탄소 PVC 정제기술과 고기능 염소화 PVC(CPVC) 컴파운드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고부가 탄소소재와 수전해 기술 등으로 연구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투자 규모보다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올해 상반기 연구개발비는 311억원으로 전년 동기 261억원보다 19.2% 늘어 4개사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매출 대비 비중 역시 0.71%에서 0.77%로 0.06% 상승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주력 사업인 합성고무와 합성수지의 고부가가치화에 집중하고 있다. 전기차 타이어용 고기능 합성고무(SSBR) 제품인 'SOL 6140E'는 고객사 품질 승인을 거쳐 초도 공급을 시작했다. 합성수지 부문에서는 자동차 엔진후드 흡음재용 시스템 폴리올과 가전용 고기능 ASA 수지의 상업화에 나섰다.
석유화학업계가 고부가 소재 개발에 집중하는 배경에는 중국 업체들의 범용 제품 공급 확대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자리하고 있다. 범용 제품과 달리 스페셜티 소재는 고객사별 요구 성능에 맞춘 기술 개발과 품질 인증이 필요해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높다. 기술력과 안정적인 공급 이력이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만큼 가격 경쟁에 따른 수익성 압박도 비교적 적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 집계된 연구개발비에는 석유화학 외 사업에 대한 투자도 포함됐다. 예컨대 LG화학은 전지·반도체 소재를, 한화솔루션은 태양광 기술 등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연구개발비 전체가 스페셜티 제품 개발에 투입된 것은 아니지만,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투자하는 규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석화업계 한 관계자는 "고부가 소재는 고객사에 한 번 채택되면 다른 제품으로 대체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들어 안정적인 거래 관계를 유지하기에 유리하다"며 "중국 업체들도 기술력을 높이고 있지만 고부가 제품은 기술 축적과 상업화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국내 기업들이 기술 격차를 유지하며 경쟁력을 확보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