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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산 원유 비중 50%대로…정유업계 '탈중동' 또다시 시험대

2026-09-14 15:52:40

호르무즈 이어 사우디 우회 수송망 '흔들'...중동 공급 불안 지속
미국산 확대에도 유종별 특성 한계…중남미 등 대체선 중요성↑
과거 다변화 뒤 중동산 회귀 전례…경제성 넘어 장기 정착 관건

호르무즈 해협 일대. 사진=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일대. 사진=연합뉴스
[빅데이터뉴스 김유승 기자]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수송망마저 흔들리면서 국내 정유업계의 원유 도입선 다변화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와 정유업계가 중동산 원유 비중을 50%대까지 낮추며 도입선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현실적인 제약을 넘어 장기적인 조달 구조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14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우회 수송망이 타격을 받으면서 원유 공급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사우디 동부 유전지대와 홍해 연안 얀부항을 연결하는 약 1200㎞ 길이의 동서송유관이 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 송유관은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하루 약 400만배럴의 원유를 수송해온 핵심 우회로다.
여기에 예멘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전략적 요충지인 페림섬을 장악하면서 홍해와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는 항로의 불확실성도 커지는 모습이다. 정부와 주요 정유 4사도 중동 대체 원유 확보와 우회 수송로 등 향후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르무즈 해협뿐 아니라 이를 피해 구축한 우회 수송망까지 위협받으면서 원유 도입선 다변화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정 지역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지정학적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국내 원유 수급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어서다.

정유업계는 이미 상반기부터 중동산 원유 비중을 낮추고 대체 공급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왔다. 대한석유협회와 한국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원유 도입량 4억6712만배럴 가운데 중동산 원유 비중은 62.3%로 지난해 상반기 68.7%보다 6.4%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미주산은 23.4%에서 26.5%로, 아프리카산은 2.0%에서 5.6%로 각각 상승했다. 하반기 들어서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70%에 달했던 원유의 중동 의존도를 50%대로 낮췄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중동산 비중을 낮추는 것만으로 공급망 불안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유마다 성상이 달라 특정 지역의 물량을 다른 지역의 원유로 그대로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동산은 상대적으로 중질·고유황 원유 비중이 높은 반면 미국산은 경질유가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국내 정유사들은 중질유와 경질유 등 여러 유종을 혼합해 공정을 운영하고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제품 생산은 원유의 유종별 특성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최근 경유와 항공유 가격이 오르는 것도 전 세계적으로 중동산 중질유 공급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어느 정도 대체해 가동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제품 생산 측면에서 완벽하게 대신하기는 어렵다”며 “중남미산 원유는 중질유에 가까운 만큼 중동산을 대체하기 위해 해당 지역으로 수입선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에 발맞춰 원유 수입선을 남미 지역까지 확대하는 작업에 나섰다. 올해 아르헨티나산 원유 88만배럴을 시범 도입했으며 이를 토대로 내년부터 본격적인 수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미 멕시코 등 중남미 주요국에서도 원유를 들여오고 있다.
대체 원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 역시 과제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인도 등 중동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동시에 미국·캐나다·중앙아시아·서아프리카산 원유 확보에 나설 경우 현물시장의 수급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 중동산보다 길어진 운송 기간과 이에 따른 운임·보험료 부담도 다변화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비용으로 꼽힌다.

장기적으로 현재의 원유 도입선 다변화 흐름이 유지될지도 주목된다. 실제 국내 중동산 원유 비중은 2021년에도 60% 아래로 떨어졌으나,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원유 시장의 공급 여건 변화 등이 맞물리며 다시 70% 안팎까지 치솟은 바 있다.

업계로서는 원유 도입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공급 안정성과 함께 경제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이다. 중동산 원유는 한국과의 운송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고, 장기 계약을 통해 대규모 물량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명확한 장점이 있어서다.

이에 따라 중동 정세가 안정될 경우 경제성을 고려한 정유사들이 중동산 원유 도입을 다시 늘릴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에너지 수급 안보의 중요성이 재확인된 만큼, 일시적 대응에 그치지 않고 다변화 기조를 장기적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또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전쟁이 끝나면 단기적으로는 가장 빠르고 경제적으로 원유를 확보할 수 있는 중동산으로 일부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호르무즈 해협이 한번 막히면 앞으로도 재차 차단될 수 있는 만큼 다변화에 대한 요구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저장 능력 등 에너지 수급 안보의 중요성이 한층 커진 만큼, 장기적으로 체질을 전환할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승 빅데이터뉴스 기자 ky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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