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넷마블·엔씨·스마게 등 서브컬처 신작 개발 지속해 개발 진입장벽 낮아지며 MMORPG 넘어 수익원 다변화 독창적 세계관·팬덤 확보가 관건... 중소사 협업도 대안
지난달 열린 도쿄게임쇼(TGS) 2026 행사 당시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멧세 전시장에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빅데이터뉴스 김유승 기자] 국내 주요 게임사들이 대규모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서브컬처 게임 개발에 무게를 싣고 있다. 기존 주력 장르의 성장 둔화와 신작 흥행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새로운 수익원 확보에 나선 것이다. 특히 개발 환경 개선으로 진입 장벽이 낮아진 데다 과거보다 흥행 가능성도 높아지면서 유망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다.
21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넥슨과 넷마블, 엔씨, 스마일게이트 등 주요 게임사들이 잇달아 서브컬처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도쿄게임쇼와 AGF 등 국내외 행사에 참여하며 이용자와의 접점도 함께 넓히는 모습이다.
본래 비주류 하위문화를 뜻하는 '서브컬처(Subculture)'는 게임업계에서 일본 애니메이션·만화풍의 그래픽을 바탕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와 독창적인 서사(스토리텔링)를 내세운 장르를 통칭한다. 이용자 간 경쟁과 캐릭터 성능 강화에 초점을 맞춘 기존 MMORPG와 달리, 캐릭터와의 정서적 교감 및 세계관 몰입을 핵심 재미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에는 소수 마니아층이 즐기는 장르로 인식됐으나, 최근에는 국내외 게임 시장의 핵심 주류 장르로 급부상했다.
먼저 넥슨은 '블루 아카이브'의 흥행 경험을 바탕으로 서브컬처 신작 개발에 나서고 있다. 자회사 넥슨게임즈의 RX스튜디오가 개발 중인 '파레이돌리아'는 '블루 아카이브' 개발에 참여했던 인력들이 제작하는 미소녀 게임이다. 캐릭터의 섬세한 표정과 움직임,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이용자와의 교감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넷마블은 지난 9월 도쿄게임쇼에서 수집형 역할수행게임(RPG) '펄인블루'를 처음 공개했다. 해당 게임은 러브코미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된 듯한 연애 경험에 RPG 요소를 결합한 모바일 게임이다. 앞서 출시한 '몬길: 스타다이브'에 이어 서브컬처 게임 라인업을 확대하는 모습이다.
엔씨는 빅게임스튜디오가 개발 중인 '리밋 제로 브레이커스'와 디나미스 원이 제작하는 '아스트라에 오라티오'의 퍼블리싱을 준비하고 있다. 리밋 제로 브레이커스는 애니메이션풍 연출과 빠른 액션 전투를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아스트라에 오라티오는 타이밍에 맞춘 대응 요소를 턴제 전투에 접목한 게임으로, 도쿄를 배경으로 마법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스마일게이트도 외부 개발사가 제작한 서브컬처 신작 2종의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컨트롤나인의 수집형 RPG '미래시: 보이지 않는 미래'는 멸망의 위기에 처한 시대를 구원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캐릭터의 위치를 활용한 실시간·턴제 결합 전투를 선보인다. 이안게임즈의 로그라이트 RPG '데드 어카운트: 두 개의 푸른 불꽃'은 일본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5명의 캐릭터가 스킬을 연계하는 전투 시스템을 함께 갖췄다.
게임사들이 서브컬처 시장에 뛰어드는 배경에는 MMORPG 중심의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려는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MMORPG는 흥행에 성공하면 장기간 높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지만, 개발과 운영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반면, 서브컬처 게임은 과거 상대적으로 이용자층이 제한적인 장르로 여겨졌으나, 최근 개발 여건이 개선되면서 시장 진입의 매력도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차별화된 일러스트와 세계관, 스토리텔링을 갖추면 과거보다 일정 수준 이상의 흥행 성과를 거두기 쉬워졌다는 평가이다. 해외에도 관련 이용자층이 형성돼 있어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비교적 유리하다.
다만 서브컬처 게임이 흥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을 갖춰야 한다. 일반 게임과 흥행 방식이 다른 만큼 장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애니메이션과 만화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른바 '오타쿠 문화'에서 출발한 만큼 이용자들의 취향과 팬덤 문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과 교수는 "서브컬처 게임은 팬들이 공유하는 문화와 은어 등을 통해 소속감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단순히 수익성이 높다는 이유로 진입하기보다 장르 특유의 문법을 이해하는 개발진이 독창적인 세계관과 정체성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존 팬덤을 확보한 캐릭터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을 활용하는 것도 흥행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꼽았다. 이용자가 원하는 초기 캐릭터 조합을 얻기 위해 게임을 반복해서 시작하는 '리세마라' 등 서브컬처 이용자 특유의 플레이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임사들이 출시 전부터 이용자와의 접점을 확대하는 것도 이 같은 특성 때문이다. 국내 최대 서브컬처 행사인 'AGF(Anime X Game Festival)'와 일본 도쿄게임쇼 등에 참여해 신작을 알리고 팬덤을 형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올해 AGF 행사에도 엔씨가 메인 스폰서로 참여할 예정이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서브컬처 게임은 출시 전부터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게임 정보를 공개하는 등 이용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팬덤을 형성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과거에는 캐릭터성만으로도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서사와 게임성, 라이브 서비스 운영까지 종합적인 완성도가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별 독창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형 게임사와 중소 개발사 간 협업도 거론된다.
김 교수는 "중소 스튜디오들이 독창적인 게임을 개발하고 대형 게임사들이 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상생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기업이 시도하기 부담스러운 창작이나 표현을 중소 개발사들이 맡는다면 더욱 참신한 게임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