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소가 중국에 밀리는 이유 (하) 韓 가스선에 집중하는 동안, 中 컨선 몰이 물량 확보해 끊임없이 건조하는 전략 뺏겨 기술력 이어 납기 능력도 한국 따라잡아
한화오션이 건조한 컨테이너운반선 사진= 한화오션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한국 조선산업이 중국에 밀리는 셋째 요인으로 한국의 고부가가치·선별 수주 전략이 컨테이너선 시장에서는 역효과를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실 한국 조선산업은 가격의 덤핑 여부는 둘째 치고, 가능한 모든 일감을 쓸어모으는 전략을 고수했다. 막대한 돈을 투자한 대규모 제조 인프라인 조선소 설비는 매초 감가상각이 이뤄지고, 대규모 인력의 인건비도 계산된다. 무엇이든 만들어 조선소를 끊임없이 돌려야 유동성이 유지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한 선종에서 적자가 나더라도 흑자를 낸 다른 선종에서 거둔 이익으로 메울 수 있었다.
그런데 중국의 부상으로 이러한 사업 모델이 깨졌다. 중국에 물량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과거 선박과 해양플랜트 모두 저가 수주를 했고, 건조 과정에서 기술적 노하우 부족으로 손실까지 내면서 2010년대 중반엔 빅3를 비롯한 K-조선업체 대부분이 동시다발적으로 채권단이 주도하는 구조개편 상황에 놓였다. 몰락과 붕괴 직전까지의 상황에 몰린 것이다. 이후 선수금환급보증(RG)을 비롯해 선박 건조 및 조선소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채권단이 수주 기이드라인을 만들어서 따를 것을 요구했고, 그때부터 한국 조선사들은 수익성 중심의 선별 수주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그 결과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K-조선 빅3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등 기술 장벽이 높고 부가가치가 큰 선종에 생산능력을 집중하고 있다. 2020년대 이후 탈석유 친환경 에너지 체제로의 재편에 따라 LNG 관련 선박과 플랜트 발주가 몰린 것도 이유가 되었다.
선별 수주 전략은 K-조선사들이 수익성 측면에서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컨테이너선 등 다른 선종 시장에서는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즉, △한국 조선소가 높은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선종을 우선하면 △대형 컨테이너선의 생산 슬롯과 견적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며 △중국 조선소가 더 많은 수주를 확보하면서 반복 건조 경험과 공급망 효율을 높이고 △중국이 가격뿐 아니라 납기와 친환경 사양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해서 △후일 한국이 컨테이너선 시장으로 돌아오더라도 과거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한국 조선소에 일감이 많다는 것과 다른 문제다. 현재의 수익성 극대화가 장기적으로 특정 선종의 시장 지위와 생산 기반을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언론들은 한국 조선소가 가스 운반선 중심으로 2029년 상반기까지 생산 슬롯을 확보한 반면, 중국은 컨테이너선 전반에서 생산능력을 확대한 점을 수주 격차의 배경으로 제시했다.
물론 K-조선 빅3가 컨테이너선 수주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호황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특히 해운시장을 주도하는 3대 메이저 선사들로부터 일감을 얻지 못했다는 것은, 장기간 쌓은 고객사와의 신뢰도 돈 앞에선 무용지물이 되어, 고객사 관리 측면에서도 비상이 걸렸음을 뜻한다.
넷째, 중국이 친환경 대형 컨테이너선 기술에서도 빠르게 격차를 좁혔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은 고난도 선박의 설계와 건조, 품질, 연료 시스템 통합 능력을 바탕으로 했다. 그러나 중국 조선소가 LNG 이중연료 컨테이너선과 초대형 선박을 연속적으로 수주함으로써 한국의 강점을 고스란히 답습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업계에선 이 변화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선사들이 친환경 선박을 발주하는 이유는 환경 규제에 대응하는 동시에 장기간 운항비를 낮추기 위해서이다. 한국만이 해당 사양을 제공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선사는 가격 프리미엄을 감수할 수 있지만, 중국에서도 요구 사양을 충족하는 선박을 건조할 수 있다면 선택 기준은 달라진다. 한국은 여전히 중국에 비교 우위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중국의 막강한 금융 및 제조공정 역량 때문에 한국의 기술 우위가 곧바로 독점적인 수주 우위로 이어지던 구조는 약해지고 있다.
다섯째, 선사들은 조선소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대 투자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K-조선 빅3가 망각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상선 건조는 기본적으로 기업간(B2B) 시장이다. 하지만, 10척 이상의 동급 선박을 한꺼번에 발주하는 것과 1~2척씩 발주할 때와는 선주들이 대하는 마음의 태도는 전혀 다르다. 한 번의 투자 선택 실패로 수십 년 이상 영위해왔던 사업이 단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은 해운이나 반도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선주는 발주에 신중을 기한다. 특히, 최근 들어 MSC와 머스크, CMA CGM 등 대형 선사들은 경쟁하면서 선대를 확대하고 있다. 선박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경쟁사에 운송 능력과 시장점유율을 빼앗길 수 있다. 따라서 선사들의 발주 전략은 △여러 조선소에 발주해 특정 국가나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유사한 사양의 선박을 대량 발주해 구매 협상력을 높이며 △선박의 인도 시점과 운항 투입 계획을 연계하고 △선박 가격뿐 아니라 연료비, 금융비용, 정비 및 운항 효율을 함께 고려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 조선소가 더 우수한 선박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선사가 원하는 시기에 필요한 수량을 건조해 인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것도 중국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낮은 가격으로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으니, K-조선 빅3는 도크는 아니더라도 국내 조선소의 건조 시설 확충을 위한 대규모 투자는 하지 않고 있다. 2010년대 중반 구조개편에 따라 축소한 건조 능력도 100% 회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조선 경기 지속에 대한 불확실성에 따라 함부로 시설 투자를 못 하고, 인력 확보 애로 및 노조 반발 등 고용 환경은 더 악화하고 있으며, 물가 상승으로 인한 투자비 부담 증가 등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지금 K-조선 빅3가 매출과 이익이 큰 폭으로 증가한 원인 중 하나는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하지 않았던 덕분이다.
K-조선 빅3는 국내 중견 조선사에 상선 건조를 하청(아웃소싱) 하거나, 해외에 조선소를 새로 건설하거나 현지 조선소를 인수‧합병(M&A)하고 있다. 이는 국내 투자는 없으리라는 것과 동의어다.
여섯 번째는 중국 조선소의 납기 경쟁력을 향상하면서 한국의 전통적인 강점마저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조선업은 품질과 납기 준수 능력에서 강점이 있다고 평가받았다. 그런데 대형 컨테이너선 시장에서는 중국의 대규모 설비 확충으로 이 강점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있다.
정확한 수치를 살펴봐야 하지만, 최근 중국 주요 조선소들은 늘어나는 일감 못지않게 수주잔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한다. 수주잔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사들에게 인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주잔량 감소세가 빨라지는 데에는 두 가지 배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조선소와 관리 능력과 기능공들의 조업 능력이 향상되면서 선박 건조공정 고도화로 이어졌고, 이로써 전체적인 건조 일정이 단축됐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소가 건조 공간을 대폭 늘려 한 번에 건조하는 선박 척 수를 늘린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중국 조선소들은 늘어난 수주 물량에 대응하고자 건조 설비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납기가 단축되면서, 더 많은 선사가 중국에 발주하고 있다. 수주가 늘면 생산 경험과 협력업체의 역량이 축적되고, 이는 다시 가격과 납기 경쟁력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반면, 한국이 가스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에 생산능력을 집중할수록 컨테이너선의 대량 생산 기반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