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잠식률 확대되며 신용등금 B+로 떨어지며 존폐 위기 정부·채권단 지원 나서면서 회생 위한 3대 조건 제시 사채권자 채무조정 위해 전국 투자자 찾아 ‘고난의 행군’ 2016년 5월 31일 세 차례, 6월 1일 두 차례 집회 열어 통과
2016년 3월 1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그룹 빌딩에서 열린 176-2회 무보증사채 사채권자집회 현장. 사진= HMM 50년사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현대상선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구 노력 가운데 하나가 사채권자 채무 재조정 문제였다. 당장 2016년 초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가 약 1조 원에 달하는데 이를 상환할 현금이 없어 법정관리 위기에 직면했다.
현대상선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구조적 손실 구조에 갇혀 현금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2013년 무렵에는 순손실 누적으로 자본잠식률이 확대되어 신용등급이 BBB-에서 B+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신규자금 조달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2013년 12월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노력했지만, 2015년 말에 이를 때까지도 부채는 오히려 늘어나고 자본잠식 상황은 더욱더 심화되었다.
그 결과 2015년 말 기준으로 현대상선이 가진 총부채는 약 5조6600억 원, 부채비율은 2007%에 달했다. 당장 2016년 초에 상환해야 할 회사채가 큰 문제였다. 현대상선이 더 이상 자체적으로 상환 능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판단한 정부와 채권단은, 이 문제를 어느 민간 해운사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물류안보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기업 회생에 직접 개입했다.
아울러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상선의 회생 지원 조건으로 △사채권자 채무조정 △용선료 인하 협상 타결 △글로벌 해운동맹얼라이언스 가입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이 중 ‘사채권자 동의에 의한 채무조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신규자금 투입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명시했다.
당시 현대상선은 국내 신용등급이 B등급 이하로 하락한 상태이고 회사채 만기 상환 불이행 시 법원 회생절차로 자동 이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따라서 사채권자 채무조정은 법정관리로 이행되지 않고 정부가 구상한 해운재건 프로그램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필수 절차로 제시되었다.
현대상선은 2016년 3월 사채권자 대상의 ‘채무 재조정채권상환유예 및 출자전환’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대상 규모는 2016~2018년 만기인 회사채를 포함하여 약 1조2000억 원이었다. 현대상선은 만기 3년 연장, 이자율 인하, 일부 회사채의 출자전환을 안건으로 제시하고, 2016년 5월 31일과 6월 1일 이틀에 걸쳐 채무재조정 안건을 의결하기로 했다.
이때부터 사실상 전국의 사채권자들을 만나 설득하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전국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거의 모든 임직원을 투입하여 각 권역별로 설득 작업에 나서도록 했다.
사채권자라고 하지만 그중에는 개인도 있고 농협이나 새마을금고처럼 서민들의 생활자금이 모인 조합 투자자도 있어 설득의 방법에는 특별한 매뉴얼이 있을 수가 없었다. 임직원들은 밤낮없이 발품을 팔아 전국 구석구석을 누비며 때로는 분노를, 때로는 하소연과 눈물을 쏟아내는 사채권자들을 일일이 대면해야 했다. 선후배를 떠나 사원급까지 나서 절박한 심정으로 읍소하고, 사채권자 근처에서 숙식을 해결해 가며 동의를 구했다. 지역 상황에 따라 채권자 사전집회를 열어 채무재조정의 필요성과 방법 등을 정성을 다해 설명하기도 했다.
임직원들은 채무재조정에 실패하여 법정관리로 갈 경우 채권 회수율이 20% 미만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채무재조정이 이루어지면 주가에 따라서 원금 회수율이 최대 100% 이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해외 선주들과의 용선료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고, 글로벌 해운동맹에도 곧 가입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채권자들을 설득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 5월 31일 세 차례, 6월 1일 두 차례 등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사채권자 대상 집회를 열었다. 첫날 집회에서 모두 6300억 원 규모의 채무조정안이 큰 이견 없이 가결되었다. 조정안은 회사채 50% 이상을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채무를 2년 거치, 3년 분할상환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첫 집회에는 2400억 원 중 86.5%인 2075억 원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참석해 100%가 찬성표를 던졌고, 이어진 집회에서는 600억 원 중 85.6%인 513억 원을 가진 투자자들이 모여 역시 100% 동의로 안건을 가결했다. 마지막 집회에는 3300억 원 중 79.7%인 2632억 원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참석해 99.9%가 안건에 동의했다.
이튿날 계속된 집회에는 542억 원 중 50.51%인 274억 원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참석해 100%가 찬성표를 던졌고, 이어진 집회에서는 1200억 원 중 83.46%인 1002억 원을 가진 투자자들이 모여 96.7% 동의로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현대상선은 총 8042억 원 규모의 사채권자 채무재조정을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임직원 모두의 헌신적인 노력이 회생의 첫 번째 고비를 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