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랙트 2조4000억에 인수...하만 이후 8년 만의 조 단위 M&A 광주에 2400억 투자해 37년 만의 대규모 증설...2028년 초 양산 유럽서 검증한 히트펌프 기술 국내로...정부 '난방 전기화' 정책 대응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제3캠퍼스 전경. / 이미지 = 삼성전자
[빅데이터뉴스 조재훈 기자]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다양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빅데이터는 새로운 경제적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빅데이터에서 추출된 산업 데이터는 불확실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발맞춰 창간의 닻을 올린 빅데이터뉴스가 2026년 9월 창간 14주년을 맞았습니다. 빅데이터뉴스는 산업 분야에 있어 빅데이터를 비롯해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취재와 분석을 가미한 발굴 기사를 통해 업계는 물론이고 독자들의 정보 니즈에 부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창간 14주년을 맞아 빅데이터뉴스는 인공지능(AI)를 중심으로 산업 패러다임 변화의 정점에 있는 대한민국 산업을 재조명하는 기사를 게재합니다.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현재 매출 상황 그리고 미래 성장 동력 확보와 투자 전략 등을 다룰 계획입니다. 대한민국의 'K-산업'이 전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데 빅데이터뉴스의 이번 기획이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편집자주>
삼성전자가 냉난방공조(HVAC)를 새로운 먹거리로 점찍고 2조4000억원 규모의 베팅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 플랙트그룹(FläktGroup)을 품으며 AI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에 진입하는 한편, 유럽에서 검증한 히트펌프 기술을 국내로 들여와 가정용 난방 시장까지 공략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서버를 식히는 대형 설비부터 아파트 온수를 데우는 보일러까지 공조 전 영역을 사업 반경에 넣은 셈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광주사업장에서 2400억원 규모의 HVAC 생산라인 착공식을 열고 공사에 들어갔으며 최근 국내 공동주택 환경에서 고효율 히트펌프 실증에도 착수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글로벌 HVAC 시장의 선도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12일(현지시간)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푸네에서 플랙트그룹 신규 생산라인 준공식을 개최했다. (왼쪽부터)데브라지 싱(Devraj Singh) 플랙트그룹 아시아영업총괄, 김철기 삼성전자 DA사업부장 부사장, 데이비드 도니(David Dorney) 플랙트그룹 CEO, 임성택 삼성전자 DA사업부 HVAC사업팀장 부사장. / 이미지 = 삼성전자
2조4000억 들여 플랙트 인수…AI 데이터센터 공조 정조준
삼성전자의 공조사업 확장 중심에는 플랙트그룹 인수가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영국계 사모펀드 트라이튼(Triton)이 보유한 플랙트 지분 100%를 15억 유로(약 2조4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11월 인수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는 2017년 하만(Harman) 인수 이후 8년 만에 성사된 조 단위 인수합병(M&A)이다.
플랙트그룹은 100년 이상의 기술력을 축적한 프리미엄 공조 기업이다. 플랙트그룹은 안정적 냉방이 필수인 대형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고서·유물을 관리하는 박물관과 도서관, 유동인구가 많은 공항·터미널, 항균·항온·항습이 중요한 대형 병원 등에 고효율 공조 설비를 공급해 왔다. 플랙트그룹은 글로벌 톱 제약사와 헬스케어, 식음료, 플랜트 등 60개 이상의 대형 고객도 확보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플랙트그룹을 택한 배경에는 AI 확산에 따른 시장 전망이 있다. 공항과 쇼핑몰, 공장 등 대형 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중앙공조 시장은 2024년 610억달러에서 2030년 990억달러로 연평균 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데이터센터 부문은 2030년까지 441억달러 규모로 연평균 18%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다만 이 시장은 글로벌 공급 경험과 최적의 설계·솔루션 제시 역량을 갖춰야 하는 진입장벽 높은 산업으로 꼽힌다.
플랙트그룹은 서버를 냉각액으로 식히는 액체냉각 방식의 핵심 장비인 냉각수 분배장치(Coolant Distribution Unit, CDU)에서 업계 최고 수준의 냉각용량과 효율을 확보하고 있다. 플랙트그룹은 '데이터센터 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DCS 어워즈 2024(DCS Awards 2024)에서 혁신상을 수상했으며, 글로벌 초대형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Stargate)'에도 참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여기에 자사의 빌딩 통합 제어솔루션 '비아이오티(b.IoT)'와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플랙트그룹의 공조 제어솔루션 '플랙트엣지(FläktEdge)'와 결합해, 서비스·유지보수 사업까지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2024년 5월 미국 공조업체 레녹스(Lennox International Inc.)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북미 시장 공략에도 나선 바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북미 최대 규모 공조 전시회 AHR 엑스포’에 참가해 북미 지역에 특화된 공조 제품과 AI 기반의 통합 기기 관리 기능을 선보였다. / 이미지 = 삼성전자
광주에 2400억, 인도 푸네엔 신규 라인…생산 거점 확대
삼성전자는 인수 이후 생산 기반 확충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9일 플랙트그룹코리아, 전남광주통합특별시와 투자협약을 체결했으며 지난 21일 광주사업장에서 플랙트그룹 HVAC 생산라인 착공식을 열고 공사에 들어갔다. 착공식에는 노태문 삼성전자 DX부문 대표이사 사장과 토비아스 케텔레(Tobias Ketterle) 플랙트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등이 참석했다.
삼성전자는 약 2400억원을 투자해 광주사업장 제3캠퍼스에 축구장 3개 크기에 해당하는 연면적 2만1800㎡(약 6600평) 규모의 공조 제품 생산라인을 구축한다. 광주사업장에 대규모 생산시설 투자가 이뤄지는 것은 1989년 설립 이후 37년 만이다. 김철기 삼성전자 DA사업부장 부사장은 "삼성전자는 미래 성장동력인 HVAC 사업을 빠르게 확대해 글로벌 시장에서 선도 기업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며 "광주 생산라인 구축은 차별화된 HVAC 사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생산라인은 2028년 초부터 CDU를 비롯해 데이터센터 공기 냉각용 팬 월 유닛(Fan Wall Unit, FWU), 컴퓨터룸 공기 처리 장치(Computer Room Air Handler, CRAH), 대형 건축물용 공기조화기(Air Handling Unit, AHU) 등을 생산한다. 이 생산라인은 플랙트그룹이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에서 운영 중인 14개 생산라인에 이은 15번째 글로벌 생산거점이다.
삼성전자는 해당 생산라인을 한국과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제조시설, 대형 상업시설의 공조 수요에 전방위 대응하는 핵심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생산라인 구축을 계기로 제품 개발부터 생산, 설치, 유지보수까지 긴밀하게 연계되는 HVAC 사업 체계도 갖춘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해외 생산 거점도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2일(현지시간)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푸네에서 플랙트그룹 신규 생산라인 준공식을 열고 AHU 등 데이터센터용 공조 장비 생산에 들어갔다. 신규 생산시설은 1만3826㎡(4190여평) 규모로 조성됐으며, 올해 초 설비 구축에 착수해 약 6개월 만에 양산 체제를 갖췄다.
해당 시설은 완전 가동 단계에 들어서면 연간 최대 6500대의 HVAC 장비를 생산할 수 있다. 푸네는 인도의 데이터센터와 산업 인프라가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인 데다 뭄바이 항구와 인접해 공급망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입지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전시회를 통해서도 공조 경쟁력을 알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북미 최대 공조 전시회 'AHR 엑스포(AHR Expo)'에 350㎡(약 100평) 규모 전시 공간을 마련하고 북미 특화 제품을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이어 지난 3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유럽 최대 냉난방공조 전시회 'MCE(Mostra Convegno Expocomfort) 2026'에서 약 500㎡ 규모 전시장을 꾸리고 플랙트그룹과 처음으로 공동 전시를 진행하며 중앙공조 솔루션을 소개했다.
전문가들도 데이터센터 냉각 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GPU의 세대가 진화되고 고성능화되면서 발열량도 증가하고 있다"며 "기존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했던 공냉식 방식으로는 더 이상 유지가 어려워 액체냉각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GPU 랙당 전력밀도는 세대별로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이미혜 선임연구원은 엔비디아(NVIDIA) 호퍼(Hopper) 기반 랙이 40kW 수준이었던 반면 현행 GB200 NVL72는 120kW, 2027년 하반기 출시 예정인 루빈 울트라 카이버(Rubin Ultra Kyber)는 600kW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반 서버랙은 25kW 안팎까지는 공랭식으로 감당할 수 있지만 그 이상에서는 액체냉각이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미혜 선임연구원은 "데이터센터 건설비용 중 IT장비를 제외한 건물·인프라 비용에서 냉각 관련 비용은 15~20%에서 상승하는 추세"라며 "삼성과 LG 등이 냉각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국내 기업의 사업 참여도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24~27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MCE(Mostra Convegno Expocomfort) 2026에 삼성부스를 마련했다. 삼성전자 전시장 입구 모습. / 이미지 = 삼성전자
유럽서 검증한 히트펌프, 국내로…아파트 실증도 착수
삼성전자는 가정용 시장에서도 히트펌프 사업을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의 'EHS'는 주거·상업시설에 실내 난방과 온수를 제공하는 솔루션으로, 공기열과 전기를 이용해 온수를 만들기 때문에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보일러보다 효율이 높고 탄소 발생이 적다.
삼성전자는 올해 유럽 시장에 2026년형 'EHS 올인원'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실외기 한 대로 공기 냉난방과 바닥 냉난방, 급탕까지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여름철 냉방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재활용하는 '열 회수(Heat Recovery)' 기능을 적용해 물 가열에 쓰이는 에너지 효율을 최대 두 배 이상 높였다.
또한 기존 R410A 냉매보다 지구온난화지수(Global Warming Potential, GWP)가 약 68% 낮은 R32 냉매를 썼다. 삼성전자는 실외기 팬 개수를 기존 2개에서 1개로 줄여 높이를 약 40% 낮춘 850㎜의 콤팩트한 디자인도 구현했다.
삼성전자는 국내 시장 진출도 본격화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를 보급해 온실가스 518만톤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올해 144억원 규모 예산을 투입해 가구당 설치비의 최대 70%를 보조금으로 지원하기로 하면서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공기열 히트펌프 기반의 'EHS 히트펌프 보일러'를 국내 출시했다.
해당 제품은 투입 전기 에너지 대비 4배 이상의 열을 생성하며, 영하 15도에서도 최대 70도의 고온수를 공급하고 영하 25도의 혹한에서도 동작하도록 설계됐다. 바닥 난방에 주로 쓰이는 35℃ 출수 조건에서 계절성능계수(Seasonal Coefficient of Performance, SCOP)는 4.9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이달부터 아파트 등 공동주택 환경 실증에도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경기도 용인시 삼성물산 주거성능연구소에 'EHS 올인원'을 설치하고 실제 아파트와 동일하게 조성된 환경에서 냉난방·급탕 성능과 에너지 효율, 사용 편의성을 종합 검증한다.
기존 국내 주거용 히트펌프는 주로 바닥 난방과 급탕만 제공해 냉방을 위해서는 별도의 에어컨을 설치해야 했으나 'EHS 올인원'은 공기 냉방과 바닥 난방, 급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현한다. 삼성전자는 이번 실증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공동주택 대상 히트펌프 보급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임성택 삼성전자 DA사업부 부사장은 "이번 실증은 제품 성능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공동주택 환경에서 히트펌프가 기존 가스보일러를 실질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프로젝트"라며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동주택의 전기 기반 냉난방 전환과 건물 부문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히트펌프 기술 개발과 보급을 지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AI 기반 에너지 관리 역량도 앞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싱스 기반 'AI 절약모드'를 통해 고효율 세탁기의 에너지 사용량이 약 30% 절감되는 것을 글로벌 탄소 검증 기관 카본트러스트(Carbon Trust)와 함께 검증했다. 삼성전자는 126개 국가에서 실사용 중인 약 18만7000대를 1년간 실측해 약 5.02GWh의 에너지가 절감된 것을 확인했다. 이는 서울시 1만4000가구가 여름철 한 달 동안 쓰는 전기량과 맞먹는 규모다.
노태문 삼성전자 DX부문 대표이사 사장은 "이번 플랙트그룹 신규 생산라인 착공은 회사의 핵심 성장동력인 HVAC 사업의 도약을 위한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광주사업장을 AI 가전과 차세대 HVAC 솔루션을 함께 생산하는 첨단 제조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