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년에 한 번, 한 달 동안 열리는 지구인의 축구 축제다. 영광과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대회인 만큼 월드컵 참가국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또한 스포츠 브랜드들의 축구화 경쟁 역시 뜨겁다.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축구화가 월드컵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길 바란다. 2018년 월드컵을 앞두고 지난 20년간 어떤 축구화들이 월드컵을 대표했는지 알아본다.
(사진=피파 아카이브 2002 월드컵 기술보고서)
2002년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 개최된 월드컵으로 최초로 아시아에서 열린 월드컵이었다. 개막전은 한국, 결승전은 일본에서 열렸다. 2002년 월드컵은 터키, 한국의 선전과 세네갈의 아프리카 돌풍, 전 대회 우승국인 프랑스의 조기 탈락 등 이변이 많이 발생했던 월드컵이기도 했다.
(사진=피파 아카이브 2002 월드컵 기술보고서)
◇ CHAMPION : 골든슈, 마의 6골을 넘어선 호나우두 축구화
머큐리얼 베이퍼 02(Mercurial vapor 02)
머큐리얼 시리즈는 나이키 축구화 역사를 관통하는 스테디셀러다. '머큐리얼 베이퍼 02'는 이런 머큐리얼 시리즈 중 월드컵에서 가장 돋보이는 성공을 거둔 축구화다.
머큐리얼 베이퍼 02의 사용자 중 돋보였던 선수는 단연 브라질의 호나우두였다. 호나우두는 이전 대회인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결승전 직전 기절하는 등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결국 프랑스에 패해 눈앞에서 월드컵을 놓쳤다. 하지만 2002년은 달랐다. 4년의 세월을 기다려 칼을 갈아온 호나우두의 발에서 머큐리얼 베이퍼 02는 불을 뿜었다.
브라질 대표팀이 월드컵 결승전으로 향하는 과정에는 언제나 호나우두와 머큐리얼 베이퍼 02가 함께했다. 머큐리얼 베이퍼 02가 골을 만들어내지 못한 경기는 잉글랜드와 치른 8강전 단 한 경기뿐이었다. 심지어 결승전과 준결승전에서 나온 브라질 대표팀의 3골은 모두 호나우두와 머큐리얼 베이퍼 02의 발끝에서 나온 작품들이었다.
호나우두와 머큐리얼 베이퍼 02는 대회 총 8골을 득점하며 골든 슈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 기록은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부터 득점왕이 6골을 넘지 못하는 징크스를 깬 일이었기에 더 의미가 깊었다.
머큐리얼 시리즈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얻은 인기와 2002년의 실적을 통해 ‘공격수의 축구화’라는 이미지로 자리 잡게 된다. 2014년에는 ‘머큐리얼 베이퍼 IX 베스트 에디션 02’ 라는 이름으로 2002년 당시를 기리는 의미에서 현대식으로 재발매되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호나우두의 골 기록
조별리그 1차전 터키전 2-1 (승) - 50’’ 호나우두
조별리그 2차전 중국전 4-0 (승) - 55’’ 호나우두
조별리그 3차전 코스타리카전 5-2 (승) - 10’’ 13’’ 호나우두
16강 벨기에전 2-0 (승) - 87’’ 호나우두
준결승 터키전 1-0 (승) - 49’’ 호나우두
결승 독일전 2-0 (승) - 67’’ 79’’ 호나우두
(사진=피파 아카이브 2002 월드컵 기술보고서)
◇ RUNNER-UP : 클래식한 야신상-골든볼의 주인
아디다스 코파 문디알(Copa Mundial)
'코파 문디알'은 아디다스가 1982년에 발매한 제품으로 축구화의 대표적인 ‘클래식’ 이다. 발매된 지 매우 오래된 모델이지만 여전히 착용하는 선수들이 꽤 있는 매력적인 축구화이기도 하다.
코파 문디알은 2002년에도 독일 대표팀 골키퍼 올리버 칸의 발에서 고전의 매력을 한껏 뽐냈다. 올리버 칸은 당시 바이에른과 독일 대표팀의 마지막 벽으로 불리는 골키퍼였다. 괴짜에 다혈질 성격으로 유명했지만, 확실한 실력과 뛰어난 리더십을 겸비해 당대 최고의 골키퍼 자리를 놓고 다투던 선수였다.
독일 대표팀은 2002년 당시 ‘녹슨 전차’라는 조롱을 받는 등 월드컵 우승과는 거리가 먼 취급을 받았다. 득점력도 상당히 빈곤한 편이었는데, 조별리그 1차 전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넣은 8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기에서 1~2골 정도만 득점했다. 그나마 2골을 넣은 것도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카메룬과의 경기뿐이었다. 토너먼트에서는 4경기에서 3골만 넣는 극악의 공격력 부재에 시달렸다.
반면, 올리버 칸은 최후방을 방어하며 상대 공격수들에게 절망을 안겨줬다. 코파 문디알 역시 2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올리버 칸을 잘 보좌하며 ‘노병은 죽지 않는다.’ 는 격언을 떠올리게 하는 능력을 선보였다. 독일을 대표하는 골키퍼와 독일을 대표하는 축구화, 이 둘은 빈약한 공격력을 지닌 독일 대표팀을 결승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독일 대표팀은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우승을 내줬다. 올리버 칸과 코파 문디알도 호나우두에 2골을 허용하는 등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버칸은 팀을 결승까지 끌어올린 공로와 수비력을 인정받아 ‘골든 볼’과 ‘야신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대회 최고 선수, 골키퍼로 선택되는 영광을 누렸다. 녹슬지 않은 기능과 멋을 선보인 코파 문디알 역시 호평받으며 ‘축구화의 바이블’로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2002년 월드컵 올리버 칸의 무실점 경기 기록
조별리그 1차전 사우디아라비아전 8-0 (승)
조별리그 3차전 카메룬전 2-0 (승)
16강 파라과이전 1-0 (승)
8강 미국전 1-0 (승)
준결승 한국전 1-0 (승)
7경기 3실점 (4강 이상 진출국 중 최소실점)
(사진=피파 TV)
◇ THIRD-RUNNER: 2002년 월드컵의 향수
아디다스 프레데터 매니아 2(Adidas Predator Mania 2)
'아다다스 프레데터 매니아 2'는 아디다스 프레데터 시리즈의 6번째 모델이다. 프레데터 매니아 2의 가장 큰 특징은 혓바닥 같이 빨갛고 긴 텅이다. 텅이란 축구화의 끈 부분을 보호하는 갑피다. 현대의 축구화에서는 텅을 찾아보기 힘든 편이지만, 과거 축구화들은 대부분 긴 텅을 보유하고 있었다. 프레데터 매니아 2는 그중에서도 유독 텅이 길어 이를 고정하는 끈이 있기도 했다.
또한, 프레데터 매니아 2는 대한민국에 잊지 못할 경험을 안긴 축구화이기도 하다. 2002년 월드컵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 박지성 선수의 멋진 트래핑에 이은 골을 함께 만들어낸 축구화가 이 프레데터 매니아 2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국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10년 이상 지난 지금에도 프레데터 매니아 2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꽤 존재한다.
프레데터 매니아 2의 인기는 공동 개최국인 일본에서도 상당했다. 당시 일본에서 많은 팬을 보유했던 데이비드 베컴이 월드컵에서 사용한 축구화였기 때문이다. 베컴은 이 축구화를 신고 스웨덴전 선제골 어시스트, 아르헨티나전 패널티 결승 골을 기록해 잉글랜드의 8강을 이끌었다.
프레데터 매니아 2는 선수, 팬 가릴 것 없이 꾸준하고 폭넓은 인기를 얻은 축구화였다. 이런 인기는 프레데터 시리즈가 아디다스의 장수 축구화가 되는데 기여했다. 2014년과 2016년에는 2002년 버전을 최대한 유지한 채로 두 번이나 리메이크되기도 했다.